한국일보

수정같은 볼프강 호수 짤츠캄머굿의 진주

2018-12-21 (금) 방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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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⑤짤츠캄머굿(Salzkammergut)

수정같은 볼프강 호수 짤츠캄머굿의 진주

유람선에서 본 마을

수정같은 볼프강 호수 짤츠캄머굿의 진주

집과 폭포


수정같은 볼프강 호수 짤츠캄머굿의 진주

호숫가에서 필자.



알프스 빙하 흘러내려 생성된 맑은 옥빛 호수 아름다움 말로 표현 못해
미카엘성당 앞 마을 공동묘지는 각양각색의 생화로 장식 너무 예뻐
일정기간 매장 후 유골에 생애 이력 기록하는 할슈타트 장묘문화 특이

첼퍼호른 산 정상은 케이블카로 30분도 더걸려$갑작스런 운모갇혀 하산어제는 밤 8시 지나 9시가 됐는데도 훤해서, 백야는 아닐 테고 신기했었다. 해가 길은 덕에 숙소로 가는 길의 계곡과 알프스 산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마냥 행복했었다. 꼬불꼬불 심산유곡을 지나 산골마을로 자꾸 올라갔으니까. 9시 30분이 지나서야 완전 어둠에 쌓였었다. 알프스산자락에서의 밤은 내겐 달콤한 휴식과 낭만자체였다.


모름지기 여행자는 그가 보는 것을 보지만, 관광객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경구가 있다. 나도 잠시나마 여행자의 기분에 젖고 싶어 여명에 산장을 나섰다. 훅 끼쳐오는 공기 냄새가 맑고 신선해 절로 심호흡하게 된다. 약간 오르막인 산간도로로 나서자 오른쪽으로 알프스의 자태가 희붐한 새벽빛 속에 드러난다. 만년설인지 하얀 모자를 쓴 신비로운 알프스의 허리쯤에서 산안개가 막 피어오르고 있다. 구름처럼 짙은 안개라 성큼 가슴을 적신다.

왼편산은 좀 낮고 구릉엔 오두막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아, 완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집이다. 샬레라는 스위스의 전통적인 통나무집들이다. 관광이고 뭐고 그냥 저런 집에서 눌러 살고 싶다. 아니 며칠만이라도 산의 품에 안겼다 가고 싶다. 헝클어졌던 삶의 방정식을 정리하고 푸는 시간을 갖기엔 안성맞춤일 터. 자연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언급했다. “알프스에서 본 풍경들이 평생 동안 자신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나 또한 그럴 게 틀림없다.

짤츠캄머굿으로 이동하는 길의 풍정은 독일과 비슷하나 알프스가 내내 따라다녀 산간지역기분에 푹 젖게 된다. 버스 안에서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며 모차르트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음악을 음미하며, 짧고 불우한 천재의 생애가 새삼 가슴 아프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세계든, 나쁜 사람은 반드시 있고, 또 공평치 못해 억울한 일 또한 다반사인 사회구조가 새삼 안타깝다.

유럽도시엔 로터리가 신호등대신 회전도로가 많다더니 여기도 그렇다. 시골길로 접어들자 산이 눈앞으로 불쑥 다가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알프스빙하가 흘러내려 오랜 세월 생성된 맑은 옥빛호숫가 앞에선 그저 말없음 표다. 미국작가 헨리 제임스가 “이탈리아 호수들은 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있다 해도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했다더니 나 역시 완전 할 말을 잃었다. 100m가 넘는 수심인데도 수정 같은 이 볼프강호수를, 왜 짤츠캄머굿의 진주라고 하는지 알겠다.

알프스산과 볼프강호수로 둘러싸인, 고대어로 소금이란 뜻의 할슈타트(Hallstatt)마을! 호수 건너편 마을풍경이 무척이나 낯익다. 바로 사진가들이 제일 선호하는 세계적인 사진명소니까. 일반인들이 사진, 달력, 그림, 영상, 어떤 경로로든 한 번 쯤은 접했을 아주 유명한 장소니까. 걸어 올라가면서 살피니 왜 이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됐는지 깨달아진다. 예쁜 꽃들을 개성 있게 장식해 정말 반하겠다. 상점 진열대도 오밀조밀 정성을 다해 요정의 나라처럼 꾸며놓았다. 산기슭이나 큰 암반위에 바투 붙여지은 집들, 그 옆으론 산벼랑에서 떨어지는 가느다란 폭포까지 있으니...

그렇게 호수를 끼고 길 끝까지 올라가니 조그만 광장에 분수와 동상, 그리고 미카엘성당이 있다. 성당 앞, 뒤로 마을공동묘지가 있는데 전부 꽃동산이다. 뻐꾸기시계처럼 예쁜 판과 철제묘비들, 바닥은 온통 각양각색의 생화로 장식해 너무 예쁘다. 죽음이란 게 섬뜩하지 않고, 언뜻 아늑한 평화와 안식의 또 다른 아름다운 세계일뿐이라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다. 천당에도 묘지가 있다면 이럴 거였다. 허긴 이곳은 70여개의 호수를 품은 낙원이긴 하다.

유럽인들은 죽음을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이해하고 삶의 일부로 여겨 마을 가까이 묘를 쓴단다. 이곳은 심한 경사지형이라 매장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유족이 유골을 발굴, 건조시킨단다. 그런 다음 색칠을 하거나 망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성당내의 납골당에 보관한단다. 일테면 해골에다 생애이력을 기록하는 특이한 할슈타트 장묘문화다. 비석에 조화 아닌 생화만 놓여있는 것도, 꽃이 시들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하겠다는 망자와의 약조란다.


점심은 호숫가의 절경에 취해 오스트리아식의 생선가스를 먹었다. 눈이 호강 하니 입맛도 산다. 그리곤 볼프강마을에서 유람선을 타니,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가들도 우리와 함께 호수 위를 흐른다. 이곳에서도 5개소에서나 촬영을 했다니 당연히 그럴 만 하겠다. 강 안개가 끼고 실비도 살짝 돋지만 호수에서 바라보는 마을그림은 또 색다르다. 알프스산맥의 기기묘묘한 암벽들이 숲, 나무랑 어우러진 것도 아련한 그리움인데,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집들 또한 압권이다. 호숫가에 턱 버티고 선 거대한 암벽의 자태가 명품이다. 이름 하여 코끼리암벽이라나. 과연 이름이 딱 들어맞는 거대한 코끼리의 이미지바위다.

에델바이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산 밑의 호수를 가는 유람선은, 도시의 강 유람선과는 운치와 차원이 다르다. 자연과 일치된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은 다시 못 올 추억이 될 거였다. 세우를 맞으며 무려 40분을 몸도 마음도 로맨틱한 행복감에 흠뻑 젖었다.

그런 다음 모차르트의 어머니 고향인 쟝크트 길겐 마을로 갔다. 왜 모차르트의 이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인지 답이 나온다. 어머니의 고향인 볼프강과, 아마데우스는 ‘신의 은총을 받은’ 그런 뜻이라니까. 모차르트의 어머니 생가가 고이고이 보존돼있다. 30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돼 모차르트의 박물관이 됐다.

해발 1522m인 첼퍼호른 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탔다. 산이 높다보니 30분도 더 걸려 올라갔다. 산의 고도에 따라 야생화, 나무들의 종류가 달라지는 걸 판별할 수 있었다. 시야를 멀리, 호수와 마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은 티 없이 깨끗해진다. 이곳의 매력은 산과 에메랄드빛 호수가 빚어낸 자연의 힘이 8할 아니 9할이나 되겠다. 저 아래 쟝크트 볼프강마을과 볼프강 호수 말고도 그 뒤로도 큰 호수가 또 있다. 멀리 피안의 세계다.

S와 Y랑 내가 일행 중 제일 끝 순서로 케이블카를 탄 바람에, 남들은 다 즐기고 내려오는 판인데 올라가는 형국이 됐다. 정상에 휴게소와 전망대가 있는데 마음만 바쁘게 돼버렸다. 최정상의 십자가 전망대 까진 아예 못 갔다. 고도차로 숨도 가쁘지만, 그보다는 말짱하다 갑자기 운무가 확 짙어져 시계(視界)를 가려버렸으니까. 옆 사람도 희미할 만큼의 운해 속에 갇히다보니, 불과 50m 아래 벤치에서 등정을 끝냈다. 혼자 끝까지 가보자고 하기도 그렇고 꼴찌로 온 바람에 모임시간이 임박했으니까. 하필 왜 그때 안개가 덮쳤는지 야속했다. 서둘러 케이블카를 타고 반쯤 내려오니, 거짓말처럼 안개가 싹 걷히면서 새파란 호수가 선명히 드러난다. 막차(?)를 탔던 탓에 안개를 만나, 남들 다 오른 최고봉을 포기한 게 새삼 아쉽고 약 오른다. 얼핏 우리 인생사의 막막한 안개들도, 이처럼 순식간에 싸악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버스는 인제 비엔나로 향한다. 가는 동안 다 못 본 ‘아마데우스’를 끝까지 봤다. 가슴이 메어진다. 인간들의 우매함과 못난 시기심에, 다신 안 태어날 그런 천재를 잃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고 안타깝다. 자고로 인간에게 나쁜 본성이 있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느 인종이나, 똑같다는 사실!

밖은 또 갑자기 천둥소리를 시작으로 번개에다 비까지 무섭게 퍼붓더니, 우리가 내리니까 귀신처럼 또 딱 그친다. 날씨가 참 고맙게도 매번 우리를 도와준다며 웃었다. 원래 동유럽의 기상도가 그렇다는 것만 자꾸 체감한 셈이다. <계속>

<방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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