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년에는 ‘새 얼굴’ 을 보고 싶다

2018-12-21 (금) 구성훈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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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사람이야? 그렇게 인물이 없나…”

단체장은 외로운 자리다. 일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단체 안팎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어떤 단체는 회장선거를 할 때마다 후보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현직 회장 또는 과거에 회장을 지낸 원로급 인사가 다시 회장을 맡는다.

이런 현상은 일부 한인 경제단체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한인의류협회는 지난 11월 초 이사회를 열고 영 김 회장과 조 송 이사장의 연임을 확정했다. 이에 앞서 한인부동산협회는 피터 백 회장과 마크 홍 이사장이 회장선거에서 단독후보로 출마해 ‘1년 더’ 협회를 이끌게 됐다. LA 한인무역협회(옥타 LA)도 김무호 현직회장이 회장선거에서 단독후보로 나서 연임을 확정지음과 동시에 회장 임기를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바꾸는 내용의 정관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월 실시된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선거에선 하기환 현 회장이 유일후보로 나서 무투표로 연임이 확정됐다. 하 회장의 경우 16~17대 회장 연임에 이어 상의 최초로 두 번 연임하는 회장이 됐다. 가주한미식품상협회 김중칠 전 회장도 연임 사례에 속한다. 그는 14대와 15대 회장을 연임하면서 2014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협회 수장으로 재직한 뒤 바통을 이상용 현회장에게 넘겼다.

물론 단체장이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리더십의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연임하는 사례도 있지만 몇몇 단체들을 들여다보면 회장을 뽑을 때 아무도 후보로 나서지 않아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일부 단체들이 이 같은 ‘인물난’을 겪는데는 이유가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불경기 때문에 사업체 운영하는 것도 힘든데 단체장까지 맡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회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단체장이 되면 단체와 관련된 각종 행사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로 인식돼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는 점도 회장직 기피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상으로 향하는 ‘통로’가 막혀 있어 젊고 유능한 멤버가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회장을 할 만한 참신한 인물이 분명히 있는데 조직의 대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들이 새로운 리더 출현을 막는다는 것이다. 과거에 회장을 지낸 ‘올드보이’의 귀환이 몇몇 단체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어떤 단체의 경우 젊은 사람이 회장을 하고 싶어도 선뜻 나설 수 없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라며 “차세대 리더를 키우지 않는 조직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것 아니냐”고 일침을 가했다. 단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이 자주 함께 밥도 먹고, 골프도 치며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거나 세미나를 여는 것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리더를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하는 단체가 한인사회에 많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리더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를 다지는 게 필수다. 단체 회원들은 ‘재산이 많아야 단체장 노릇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하며,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든지 주변사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장’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회장 후보는 선거에 앞서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회원들에게 밝히고, 회원들은 심사숙고해서 단체 발전에 도움이 될 적임자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9년 기해년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연말은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 결심을 다지는 시기다. 새로운 리더가 필요한 단체라면 2019년을 ‘리더 육성의 해’로 삼으면 어떨까. 리더가 될 인물은 단체 내부에 있을 것이다. 새 얼굴의 화려한 등장은 기자만의 바램은 아닐 것이다.

<구성훈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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