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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하이패션과 미국 스트리트 패션의 결합

2018-12-19 (수) 12:00:00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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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식보다 자기만족 추구, 문화 다양성 트렌드 타고

▶ 명품 브랜드들은 변신 중

유럽 하이패션과 미국 스트리트 패션의 결합

하이 패션이 캐주얼한 스트리트 패션을 흡수하고 있다. <구찌 인스타그램>

지금까지 하이 패션 생산의 주도자는 대부분 유럽이었다. 1900년대 초 도제 시스템과 귀족들의 주문 제작에서 벗어나 패션 하우스를 선보인 것도, 그 이후 파리와 밀라노, 런던을 중심으로 패션 산업을 이끌어 온 것도 유럽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잘 팔린 기본 의상들이 세계대전을 거치며 패션계에 자리를 잡은 유럽의 옷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은 패션 소비의 중심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많은 유럽의 패션 하우스들이 미국 소비자들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성장 동력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중동 지역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중국이 상당한 소비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 포멀 웨어를 시작으로 오트 쿠튀르, 아방 가르드 패션 등으로 나아가며 하이 패션의 영역을 넓히는 동안, 미국에서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캐주얼한 옷이 많이 생산됐다. 스포츠, 캠핑,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들이 내놓은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옷은 일상 생활에서 대중에게 많이 소비됐다. 이런 기능성 옷 역시 전 세계로 확산돼 많은 이들의 캐주얼한 일상복으로 즐겨 입었다.


시간이 흐르자 유럽에서 온 격식을 차린 옷과 미국에서 온 일상의 옷은 기능과 스타일에 따라 활용법이 분리됐다. 점잖고 격식 있는 자리에선 영국의 맞춤 브랜드나 유럽의 디자이너 하우스가 만든 멋진 옷을 입는다. 하지만 고급스러운 옷을 입는 사람들도 집에서는 캐주얼한 청바지와 티셔츠, 다운 파카와 후드를 입기 마련이다.

양분화된 패션은 최근 들어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하이 패션의 주된 소비자들이 글로벌화하고, 세대가 교체됐으며, 스트리트 패션이 주류 패션으로 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전반적으로 실용적이고 편안한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복장의 격식이나 규율보다는 건강이나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변화에 하이 패션은 브랜드의 타깃을 바꾸고 디자이너를 교체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최근 구찌와 발렌시아가가 내놓는 제품들은 분명 이전 고객의 취향과는 다르다. 스트리트 패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초반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브 컬쳐’(하위문화)를 하이 패션의 눈으로 해석하고 적용한 옷이 나왔다. 리카르도 티시의 지방시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 등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실용성이 중요해지면서 관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웃도어 패션을 음악과 문화 등 서브 컬쳐 분야에서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또 다양성이 무엇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패션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창조성을 키워온 이들이 각광을 받기도 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알릭스 스튜디오나 콜드 월 같은 미국의 스트리트 기반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하거나 파리에서 직접 쇼를 시작했다. LVMH는 루이 비통 남성복의 디자이너로 래퍼 칸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를 데려왔다. 리애나는 퓨마와 협업으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패션협회(CFDA)는 2018년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슈프림의 제임스 제비아를 선정했다. 마이클 코어스가 베르사체를 사들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 새로운 주도 세력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일종의 무기로 삼고 있다. 하이 패션의 소비가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고급 브랜드가 수용할 수 있는 문화도 예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 이면엔 자국 중심적 면모도 보인다. 얼마 전 중국의 돌체 앤 가바나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유럽의 고급 패션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든 걸 다 양해하고 넘어가던 시대는 지났다.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로컬로 행동하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까지는 파리에 가서 컬렉션을 열고, 역사와 전통의 유럽 브랜드에 들어가는 게 전형적인 성공의 길이다. 케링과 LVMH 같은 유럽 대형 회사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오히려 변화가 감지되자 발 빠르게 외부에서 참신한 인재를 찾아 주요 브랜드를 맡기고 있다. 주류 패션의 변화, 그리고 다양성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션을 보여 줄 수 있다. 앞으로 패션이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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