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로(歸路)

2018-12-08 (토)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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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야외조각 공원을 다녀오던 날, 가을은 끝내 떠나갔다. 나무와 풀 숲 사이에 놓여 있는 거대한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동안 차가운 철판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생명을 불어 넣었을 작가의 손길을 상상했다. 어쩌면 밤마다 쏟아지던 달빛과 들판을 메우던 갈대의 흔들림이 그 조각 작품들을 키웠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 조각 작품에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은 이들의 관심이, 언덕 아래로 달려가 작품 앞에 서서 오랫동안 올려다보던 이들의 눈길이, 그 작품들에 숨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는 경우란 습관적인 것을 끊는 것이고, 새로운 것을 본다는 것은 습관적인 것을 끊고 멈추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도 앞선 이들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그 차가운 철 구조물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로(歸路)의 파크웨이(Parkway) 주변은 늦은 가을이 수북이 내려와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자동차 백미러 안에서 오래도록 반짝였다. 앞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서두르지 않는 마음의 다름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운전하는 것도 좋았다.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 듯 CD를 바꾸었다. 언젠가 아내의 차에서 듣던 아리아였다. 이 노래는 마음 가장 깊은 곳 까지 파고들어 와 모세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며 깊은 서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가슴에 맺힌 회환 같기도 하고, 도저히 풀어 낼 수 없는 여인의 한숨소리처럼도 들렸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이 노래가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 잡이(Les pecheurs de perles)’에 나오는 아리아 ‘귀에 남은 그대의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페라의 내용은 모르지만 이 아리아를 듣는 내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아내로 부터 이 아리아가 사랑했던 여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보다 절절한 그리움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우리는 이 오페라를 보기로 결정했다. 운 좋게도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정기공연 계획에 올라와 있었다. 그동안 해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아내를 따라 공연을 관람하면서도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2주 남짓의 시간이 이렇게 설레어 본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리아 한 곡을 들으려고 오페라를 봤다는 오랜 지인의 말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도시의 밤은 천천히 왔으나 빌딩 숲 사이로 부는 바람은 오히려 매서웠다. 이번만큼은 예측할 수 없는 교통상황에 번번이 연주회 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하며 마음 졸이던 경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럴듯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연주회가 끝나면 유리창이 보이는 카페에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연주회의 여운을 오랫동안 느끼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늘 바람으로 끝나고 우리는 다시 연주회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움직이지 않는 차 안에 갇혀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임박하자 오페라 홀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왕궁의 파티에 초대되어 온 모습들이었다. 아내도 모처럼 옷장 깊숙이 묻어 둔 옷을 꺼내 성장을 했다. 나도 허름한 일상의 옷을 벗고 파티의 하객이 되었다. 사람들이 홀 안으로 들어설 때 마다 차가운 바람이 코트 자락에 매달려 왔다. 백발의 노신사가 아내를 부축하며 붉은 카펫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인생의 변곡점을 수십번은 넘나들었음직한 지긋한 나이의 사람들이 오늘밤은 사랑하는 연인을 애타게 부르는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도시의 바람을 묻힌 채로 이곳에 모인 것이다.

알려진 대로 ‘진주 조개잡이’의 서사는 평면적이고 단순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는 아리아가 수천의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한 사람을 그리는 그리움이 이토록 애타게 하는 까닭을 나는 잘 모르겠다. 짝사랑이 그러했는지, 아니면 첫사랑이 그러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왠지 통한의 뉘우침이며 회한일 수도 있겠다. 수천의 사람이 그것을 알기 위해 왔으나 아무도 그 답을 찾지 못했으니 어쩌면 내년에도 다시 이 연주회에 와 있을지 모르겠다. 살면서 잊었던 오래된 감정, 가슴에서 풀어내지 못했던 회한을 연주회를 보며 위로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음악의 볼륨을 크게 높이며 흥얼거린다. 가을은 갔어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여운이 그래서 더 애틋한 밤이다.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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