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아파야 눈이 뜨인다

2018-12-04 (화) 정민규 / 샌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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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죽다가 살아난 것 같다. 감기 후유증으로 보름을 앓다가 겨우 기력을 회복해 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정월 초에 난생 처음 독감에 걸려 한 달을 고생했을 때에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머리는 세게 부딪친 것처럼 아프고 귓속과 목 안은 찢어진 듯이 통증이 심했다. 눈을 뜨면 천장이 360도로 빙빙 돌아가고 속은 심한 뱃멀미 하듯이 울렁거려서 바로 옆의 화장실에 눈을 감고 기어가야만 했다.

참을성이라고는 한 성깔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침대에 간신히 기어 올라가 엎드리니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세요”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기도 처음이었다. 나란 인간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던가. 일련의 고통 속에 몸과 마음은 한없이 허물어져 내려앉았다.

일년 전 이맘때에 아내의 위태로웠던 두번째 심장판막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내려놓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음에도 붙잡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내가 아프고서야 알게 됐다. 아직도 내 마음 깊숙이 감춰진 시기와 질투, 탐욕과 음란, 교만과 이기심 등등을 바라보면서 고통으로 죽음의 단면을 경험케 허락하신 하나님께 고개를 숙였다. 아프지 않고 옥토밭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정민규 / 샌리앤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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