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침내 수십미터 절벽 앞에… 입안이 마르고 써진다

2018-11-30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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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 Antonio Ridge Traverse ( Baldy to Iron )

▶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과연 무사히 해낼까… 불안한 긴장이 엄습한다

마침내 수십미터 절벽 앞에… 입안이 마르고 써진다

Gunsight Notch의 Upper Part

마침내 수십미터 절벽 앞에… 입안이 마르고 써진다

위에서 바라 본 Gunsight Notch


정상부근에서 2마리의 산양(Bighorn Sheep)이 뭔가를 찾아 부지런히 땅을 헤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작아 보이니, 아마도 새끼와 어미일 것이다. 이 산양을 보면서 오늘의 산행이 상서로울 아주 좋은 징조라는 말을 서로 나눈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의 상태가 어느 틈엔가 좋아져 있다.

West Baldy의 정상바위에서 기록사진을 찍는다( 08:21; 4.7마일; 9988’). 저만큼 멀리 Baldy 정상에 2명의 등산객이 올라있는 정경을 뒤로 하고 Iron을 향하여 West Baldy의 서쪽 경사면을 내려간다. 저 아래로 Iron Mountain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는 아주 조그마한 낮은 봉우리로 보인다. 오늘 우리가 아니 내가 과연 저 낮고도 높은, 작고도 큰, 저 산에 오를 수 있을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차츰 더 가팔라지는 West Baldy의 서쪽 어깨를 내려 간다.

2010년에 한번 내려갔었던 길이라지만 마냥 생소하다. Use Trail이 선연하여 길을 벗어날 염려는 거의 없다. 왼쪽 아래의 하늘가에는 누르스름한 구름띠가 수평으로 펼쳐져 있다. 매우 강력하고 건조한 산타아나바람을 타고 목하 캘리포니아의 여러 산림을 맹렬히 태우고 있는 산불들로 인한 연기층일 것이다.


혹시 이 길을 다시 오르게 될지도 모르고, 또 너무 많은 물을 지녔다는 판단으로 하산로의 중앙에 물 한 병을 내려 놓는다. 바람이 더욱 세차다. 고도 9000’ 쯤에는 바위들과 Lodgepole Pine들이 뒤섞인 고지대의 골격미에 자꾸 한눈을 판다. 8500’ 내외의 능선에는 의외로 거목들이 즐비하고 초목들이 싱그러운 푸른 숲이다. 더 아래 낮은 곳에는 가시가 날카로운 Buckthorn들의 세계이다. 때때로 이들이 너무 칙칙하게 밀집되어 길을 삼킨 형국이라, 말 그대로 ‘형극의 길’을 가기도 한다. Jason이 앞장을 서서 GPS를 참조하며 부지런히 길을 찾으며 나아간다. 나는 주로 뒤에서 일행을 그저 따라가는 모양새이다.

돌연 저 앞에서 이 쪽으로 다가오는 등산객이 눈에 띈다(10:07). 이런 외진 곳에서 웬 등산객일까, 그것도 혈혈단신이라니! 40대의 나이로 보이는 인도계 등산객이다. Suria라는 이름의 젊은이다. 03시에 East Fork 주차장을 떠나, Iron을 거치고 Gunsight Notch를 지나오는 길인데, 이 길로 Baldy에 오른 후, 다시 이 곳과 Notch, Iron을 경유하여 East Fork 주차장으로 돌아 갈 거란다. 이 험하고 외딴 길을 혼자서 그것도 왕복으로 산행을 한다는 그 용기가 실로 놀랍도록 대단하다. Jason이 Gunsight Notch의 상태를 묻는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단다. 너무나 안심이 되는 기쁜 말이다. Suria라는 말이 태양을 뜻한다니, Gunsight Notch를 앞두고 불안해 하는 나를 위로해 주려 하늘이 배려하신 전령(Herald)일 거라고 상상하며 한결 가뿐한 마음으로 길을 간다.

능선의 중간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진 봉우리인 San Antonio Ridge Peak(7903’)에 올라 선다(10:41; 6.9마일). 잠시 이 산을 우리 Sierra Club의 HPS List에 올린다면 어떨까 라는 유쾌한 상상을 해 본다. 다시 잔잔하게 내리고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머잖아 마주하게 될 Gunsight Notch에 대한 나의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 주려는 듯, 그 안전통과를 100% 확신한다고 Jason이 거듭 천명한다. 단, 중간에 부상 당한 의외의 등산객을 조우치 않는 한, 성공적으로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결연한 그의 자신감이 내게는 크게 위안이 된다. 거친 Buckthorn들의 무더기 사이로 Yerba Santa가 밭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이게 바로 Gunsight Notch에 이르는 마지막 봉우리(11:40; 8.2마일; 7748’)이다. 혹자는 이를 캠핑에 적합하다는 의미에선지 ‘Campsite Peak’으로 칭하는 글을 읽었다. 정상부위가 평평하거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노오란 꽃이 흐드러지는 Rabbit Brush들이 Buckthorn과 함께 카펫을 펼쳐 놓은 듯한 정경을 연출하고 있어 그 이의 표현에 공감한다.

이제 이 쯤에서는 Iron Mountain이 한결 가까이 보이는데, 그 험준한 줄기의 굴곡들이 마치 등을 잔뜩 움추린 채 가시털을 곧추 세우고 이곳을 노려보고 있는 고슴도치처럼 사납게 느껴진다. 사실 여기서는 대망의 Gunsight Notch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겠으나, 칼로 싹뚝 잘라 낸 듯 깊고 낮게 함몰된 지형이기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기 전에는 그 형용이 보이지 않는다. 서쪽으로 내려갈수록 차츰 경사가 커진다.

Gunsight Notch에 아주 근접해서는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이 된다. 모서리가 날카로운 바위덩이들이 능선을 이루고 있는 중에 창날같이 뾰쪽한 잎으로 무장한 Chaparral Yucca들이 마치 전략적 요충지를 수호하는 초병들인양 위협적인 기세로 포진해 있다. Gunsight Notch의 바로 앞 30m쯤까지 접근해서야 Notch 상단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쯤에서는 직진으로 이쪽 줄기의 경사면을 끝까지 내려가서 Gunsight Notch의 바닥면에 내려 서기에는 경사가 너무 급전직하여서 위험하다. Jason이 앞서서 이 방향으로 바닥까지 내려 갔는데, 우리들에게 자기를 따르지 말라 외친다. 30m쯤을 뒤로 돌아 되올라가니 Ridge의 남쪽면으로 덜 가파르게 내려가는 희미한 Use Trail을 볼 수 있다. 이 길도 마지막 부위는 역시 대단히 가파르나 바닥면까지의 낙차가 크지 않아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마침내 한 주일을, 아니 8년여를 오매불망턴 그 Gunsight Notch의 바닥에 이른다. 8년 전 그 때의 정황을 회상하면서 수직에 가깝게 절단된 서쪽의 암벽면을 올려다 본다(12:07; 8.5마일; 7310’). 단애의 높이와 너비가 각기 10m 가량인 가파른 바위절벽 앞에 다시 선 것이다. 동쪽과 서쪽의 두 절단면의 간격이 짧아서, 바닥에 섰을 때, 내 카메라로는 절단면 전체를 한 컷으로 찍을 수 없다. 높다란 바위 절벽이 바로 코 앞 가까이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여러 등산인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바닥에서 왼쪽편에 있는 급한 내리막을 따라 절벽면의 남쪽 옆을 따라 20여m를 나아가서 오른쪽 위에 서있는 큰 고사목을 올려다 보면 45도 정도로 경사진 도랑(Chute)을 볼 수 있고, 미끄럽지만 이를 따라 올라가면 Gunsight Notch 절벽면 위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도랑의 위치는 Notch절벽의 남쪽면을 살펴보면 푸른 관목들이 위에서 아래로 반듯하게 이어지며 자라 있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용감무쌍한 용사 Jason은 그렇게 우회하지 않고 대뜸 정공법으로 도전하려나 보다. 곧바로 절벽면의 바위턱에 올라서서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으려 절벽면 이 곳 저 곳을 두루 살핀다. Argo 원정대를 이끌었던 그리스의 영웅 이아손(Jason)의 환생이 분명하다. 이어서 Sunny도 Jason에 이어 바위절벽면에 올라서서 함께 좌우를 살펴 나간다. 신화속의 Medea가 따로 없다. 아마도 저 위의 고사목에 예의 그 찬란한 황금양털(Golden Fleece)이 걸려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Susan과 나는 맨 아래 바닥에 서서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며 이들의 모험을 지켜 본다. 긴장감 때문인지 입안이 바짝 마르고 입이 아주 써진다.

절벽을 오를 때, 장애가 되지 않도록 양쪽 가슴에 걸고 다니는 카메라와 GPS를 떼어 배낭에 넣는다. 배낭의 무게에 몸이 밀리지 않도록 여유분 물 1병을 바닥에 내려 놓는데, 혹시 이곳으로 되돌아 올 Suria에게 도움이 될지 몰라 눈에 잘 띌만한 곳을 택한다.

Jason의 권고로, 바위를 잡는 손의 감각이 최대한 명민토록 장갑을 벗는다. 아래에서 볼 때, 위에 있는 큰 고사목을 기준으로 약간 왼쪽의 절벽면 3m정도 높이에 우선 올라선다. 전혀 어렵지 않고 안전하다. 여기서 오른쪽에 길게 흘러내리는 돌출된 바위 모서리를 잡고 이를 오른쪽으로 넘으면 바로 발을 딛고 서기에 안심이 되는 바위면에 올라 서게 된다. 여기에서는 위의 고사목의 약간 오른쪽을 향하여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지금 오르는 암벽의 오른쪽 아래는 특히 수십미터에 달하는 낙차가 있는 아찔한 절벽이라 다소 두려운 느낌은 피할 수 없다. <12월 7일자에 계속>

정진옥 310-259-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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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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