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난민 캐러밴, 뭔가의 전조일지도…

2018-11-2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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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시끄러웠다. 그 출발지점은 온두라스였다. ‘미국, 오직 미국행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조직된 난민행렬이다. 과테말라를 거쳐 멕시코로 북진을 거듭하면서 그 숫자는 계속 불어났다.

급기야 미 언론들은 일제히 그 캐러밴 행렬을 주시하기에 이르렀다. 뭐랄까. 중세 이전 야만족인 서고트족의 침공사태 같은 위기가 눈앞에 다가온 듯이. 그 공포감을 더욱 조장시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들을 범죄 집단인 양 묘사하면서 캐러밴 행렬의 미국국경 돌파를 막겠다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보다 더 많은 병력을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배치한 것.

그 타이밍이 그렇다. 중간선거를 얼마 안 둔 시점이다. 때문에 트럼프 진영이 만들어 낸 ‘October Surprise(선거 막판에 터져 나와 판세를 뒤흔드는 사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거가 끝났다. 캐러밴 이슈도 가라앉는 듯 했다.


1진, 2진, 난민행렬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역에 속속 도착하면서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나온 보도는 국경에 배치된 미군에게 무력사용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또 다시 워싱턴 조야가 시끄럽다.

‘인도주의냐, 국경 보호냐’- 이 문제로 소연(騷然)한 가운데 한 가지 암묵적 합의가 드러나고 있다. 당초부터 현역 미군병력의 국경배치는 과잉대처였다는 것. 그 정도 위기는 아니라는 거다. 진보진영만이 아니다. 보수언론도 비슷한 시각이다.

‘그렇지만 수천 명의 다국적 난민 캐러밴의 북진 사태는 하나의 전조로 봐야 하지 않을까’-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주장이다. 맞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전 미국-멕시코 국경에 미군을 배치해야할 안보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약으로 찌들었다. 라틴 아메리카국가들이 보이고 있는 공통적인 병폐다. 그 결과인가.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 20개국 중 17개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몰려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난민 캐러밴의 출발지역인 온두라스로 수도 테구시갈파의 살인율은 런던의 20배다.

폭력과 살인에 있어서는 이웃한 엘살바도르, 니카라과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북쪽으로, 또 남쪽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큰 차이가 없다. 마약전쟁의 와중에 있는 멕시코는 최근 들어 최악의 살인율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 브라질의 살인사건도 지난해 6만3,880건으로 역시 기록이다.

또 다른 문제의 나라는 베네수엘라다. 우고 차베스와 그의 후임자 니콜러스 마두로의 사회주의 실험으로 나라가 거덜 나면서 2014년 이후 해외로 빠져나간 난민만 200여 만이다.

그 베네수엘라는 금융범죄, 돈세탁, 인신매매의 허브가 됐다. 부패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범죄를 눈감아 주는 정도가 아니다. 마두로 체제 자체가 ‘초국적 범죄기업’이 되다시피 했다. 사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중국이, 러시아가 이 같은 베네수엘라의 ‘마피아 국가화’를 암암리에 사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퓨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미지역 국가 국민들의 대다수는 미국행을 원하고 있다. 폭력에, 살인, 그리고 엄혹한 경제난으로부터 유일한 피난처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또 다른 공통된 문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라는 점이다. 빈부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밀려들고 있는 제 4 산업혁명의 물결은 단순기술 내지 중간기술 단계 직종의 소멸사태를 불러일으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낙오자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장래를 더 어둡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기후변화다. 이상기후로 커피재배가 잘 안 된다. 과테말라 농민들이 맞은 현실로 고향 땅을 버리고 이들은 난민 캐러밴에 합류하고 있다. 브라질의 농업생산성도 크게 떨어졌다. 역시 이상기후 탓이다.

이상기후는 전 세계적 현상으로 미국 등 부유한 선진국가들은 그런대로 잘 대처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제3세계 국가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패했다. 그런 마당에 이상기후가 덮친다. 그럴 때 라틴 아메리카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내전상태의 시리아에서 그 모습이 찾아지지 않을까’- 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는 답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심한 가뭄, 물 부족 사태가 내분으로 번졌다. 거기다가 이데올로기 문제가 겹치면서 급기야 내란을 불러일으켰다. 시리아 내전사태의 본 모습이다.

그 시리아 내전 확대판이 이상기후에 시달리는 라틴 아메리카가 맞이할 장래가 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시리아 사태는 대대적인 중동지역 난민사태를 불러왔다. ‘유럽행만이 살 길이다’- 몰려드는 난민- 그 상황을 맞아 메르켈 독일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인도주의냐, 국경 보호냐’로. 결국 인도주의를 택했다. 국경을 연 것. 그러자 불과 4개월 사이 100만 이상의 난민이 몰려들었다.

그게 2015년 8월의 일로, 이와 함께 유럽의 정치지형에는 대지진이 일어난다.

반 이민정서가 팽배해지면서 ‘브렉시트’사태가 발생했다. 폴란드 헝가리 등지에는 극우 권위주의 형 정권이 들어서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지에서는 중도좌파 정권이 잇달아 무너졌다. ‘유럽은 하나’란 EU(유럽연합)의 이상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과잉대처일 수 있다. 그렇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 트럼프의 캐러밴 대처방안은 방향성에 있어서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내셔널 리뷰지의 지적이다. 맞는 진단일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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