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자녀들 왕따에서 안전한가?

2018-11-23 (금)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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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학생 추락사 사건은 충격적이고 비극적이다. 동급생 4명이 한 학생을 아파트 옥상에서 무자비하게 집단 폭행하고 이를 피하려던 중학생이 추락해 사망했다. 피해 학생은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동급생들은 추락 직전까지 잔혹하게 구타했다. 피해학생은 어려서부터 줄곧 놀림과 폭행 등 왕따를 당했으며 어머니가 러시아인인 다문화가정 자녀다.

미국에서도 이 달 초 비슷한 비극이 발생했다. 네바다에 거주하는 한 10세 소년이 학교에서의 왕따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끊으려다 발견됐다. 소년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 판정을 받은 상태다. 통계에 따르면 15~24세 학생 중 매년 6,000여명이 왕따와 관련된 문제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왕따의 ‘bully’와 죽임의 ‘cide’가 합해진 ‘불리사이드’(bullycide)란 신조어가 생길 만하다.

미국에서 왕따 문제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왕따라면 주로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것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무척 광범위하다. 남에 대해 욕설을 하거나 비하하는 언어 왕따,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에 대해 수치감을 주는 성적 왕따, 인터넷이나 소셜 서비스 등을 통해 괴롭히는 사이버 왕따 등이 모두 해당된다.


그렇다면 누가 왕따 피해를 많이 당할까.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이 주 타겟이며 외모나 성적 정체성, 인종을 비하하는 왕따도 눈에 띠게 늘었다. 한 조사에서는 신체적으로 뚱뚱하거나 비만인 학생들의 84%가 놀림을 받거나 왕따를 당했으며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다는 비율도 74%에 달했다.

인종별로는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학생이 더 많은 왕따를 당했다. 지난해 미국 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아시안 학생 17%가 왕따를 경험했는데 이는 백인(2.8%), 흑인(7.1%), 라티노(6.2%)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6배에 달하는 수치다. 또 아시안 중고생 중 17%는 한 해에 최소한 한번은 무기를 통한 폭력이나 위협을 경험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철렁해진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거나 액센트가 있는 초기 이민자나 유학생도 불안하다. 한 지인은 “10여년 전 뉴욕의 백인이 많이 다니는 중학교에 조기 유학을 온 조카가 영어를 잘 못해 계속 무시당하고 점심도 혼자 먹어야 할 만큼 외톨이로 지내 힘들어했다“며 ”결국 조카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불리사이드’까지 가지 않더라도 왕따의 후유증은 여러 모양으로 심각하게 표출된다. 일반적인 것은 등교 기피증이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 약 7.2%의 학생들이 왕따로 인한 위협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은 경험이 있다. 또 전국에서 매일 약 16만명의 학생이 폭력이나 언어적으로 괴롭힘을 당할까 겁이 나 학교를 빼먹는다. 왕따를 경험한 학생들은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며 이로 인해 약물이나 알코올, 흡연 같은 유혹에 더 잘 빠지게 된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11~23세 청소년 중 인종적 왕따나 차별을 경험한 10대 흡연율은 그렇지 않은 경우 보다 80%나 높았다.

왕따는 한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행위다. 그렇다면 자녀가 왕따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전문가는 우선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라고 한다. 쉽게 민감해지고 긴장을 잘하고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조용해서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주로 왕따의 타겟이 된다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또 아무리 바빠도 자녀와 자주 대화해야 한다. 혹시라도 왕따가 의심되면 자녀가 이를 용기내어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고 싶은 당사자의 용기가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학교에 알리고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왕따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너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왕따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것은 부모의 각별한 관심과 인내, 노력, 사랑이다.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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