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임배추ㆍ기본양념을 구입, 간을 맞춰 그냥 버무리거나 입맛 맞게 양념 추가하면 끝
▶ 보관시 공기와의 접촉 줄이고, 속이 깊고 폭좁은 김치통 좋아
직접 김장에 나선 신 김장족들은 절임 배추 등 간편 재료를 이용하고, 과일과 젓갈 등을 취향대로 활용해‘나만의 김치’를 완성한다. 김치는 배추뿐 아니라 무, 파 등 다른 재료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올가 제공>
김수민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맛 나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양념에 홍시를 넣었다. <김수민씨 제공>
장철이다. 한식 밥상에서 김치는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반찬 중 하나다. 한겨울 밥상을 책임질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일이 과거 한국 가정에선 최대 연례행사로 꼽혔다. 배추를 씻고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무치는 일련의 과정은 고된 노동이면서도 떠들썩한 축제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젠 풍속도가 달라졌다. 식습관이 변하고, 1인 가구가 느는 등 김치에 대한 소비 양태가 변해서다. 날을 잡아 온 식구들이 대동단결해 김치를 담그기보다 ‘나 홀로 김장족’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절임 배추, 김치 양념 등 손질된 재료를 이용해 소량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DIY(Do It Yourself) 김치’를 만든다. 이들 신(新) 김장족은 취향대로 간편하면서도 다양하게 김치를 즐길 수 있다며 새로운 김장 문화를 예찬한다.
홍시, 토마토 넣고, 양념과 젓갈도 입맛대로일곱 살 딸을 키우는 주부 김수민(31)씨는 최근 마트에서 절임 배추 10포기만 주문해 김치를 담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친정과 시댁에서 김치를 공수해오거나 부족할 때 직접 사먹었다. 그러다 아이가 김치를 즐겨 먹으면서 직접 김장을 했다. 김씨는 “안 맵고 시원한 맛을 좋아하는 아이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구하기 어려워 김장을 해봤다”며 “번거롭긴 해도 절임 배추나 찹쌀 풀 등 간편한 재료를 사용하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김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 배추 10포기로 배추김치를 비롯해 백김치와 홍시김치까지 만들었다. 김치 만드는 법은 인터넷카페와 블로그 등을 참고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보니 홍시를 양념에 넣으면 너무 달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뒷맛이 개운하다는 후기가 많아 2포기는 홍시를 넣은 양념에 버무렸다”고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씨는 “아이가 너무 좋아해 틈틈이 조금 더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맛을 제대로 낼까 우려했던 홍시김치는 홍시가 양념에 스며들어 도드라지지 않고 은은한 단 맛을 냈다. 김씨만의 김치 비법은 또 있다. 그는 김치 양념에 새우젓과 까나리액젓을 반반 섞어 넣는다. 그는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신선한 새우젓을 넣을 수 있고, 양도 풍부하게 쓸 수 있다”며 “새우젓만 넣으면 심심할 수 있는데 액젓을 함께 넣어 보니 깊은 맛이 났다”고 했다.
두 아이가 있는 워킹맘 임주이(36)씨도 올해 처음 ‘나만의 김치’ 만들기에 성공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댁이나 친정에서 만든 김치를 가져다 먹었다. 매번 가져다 먹기도 번거롭고 금방 쉬어버리는 탓에 오래 먹지도 못해 직접 담가 먹기로 했다. 마트에서 공수한 절임 배추 11포기를 기본으로 김치 양념은 파, 무, 마늘, 생강, 새우젓, 고춧가루 등 기본 재료만 넣었다. 임씨는 “가족들이 젓갈이 들어간 김치나 신 김치를 안 좋아하는데, 시중에서 젓갈 등을 안 쓴 김치를 찾기 어려웠다”라며 “배추를 소금에 절이지 않아도 돼 양념에 버무리거나 간만 맞추면 돼 비교적 간단하게 김장했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백김치를 많이 만들었다. 친정으로부터 전수받은 방법을 썼다. 사과와 배를 채 썰지 않고 옆으로 얇게 저미듯 잘라 넣어 맛을 냈다. 미나리, 쪽파, 마늘, 생강 등 시원한 맛을 내는 재료도 풍성하게 넣었다. 젓갈 대신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임씨는 “사먹는 김치는 아무래도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 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며 “과일을 많이 넣고 간도 좀 싱겁게 해 아이들 입맛에 맞춰주다 보니 아이들도 훨씬 잘 먹는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인 김이경(31)씨는 올해 남편과 둘이 처음으로 김장을 했다. 매번 사먹다가 ‘갓 담근 김치’를 먹고 싶어 절임 배추와 김치 양념까지 한번에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김씨는 “시중에 판매하는 다양한 김치를 사 먹었는데, 아무래도 바로 담근 듯 신선한 김치를 먹기가 어려웠다”며 “김치찌개나 볶음밥 등 김치를 활용한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시중에서 판매하는 김치로는 제 맛이 안 났다”고 말했다. 부부는 절여진 배추와 기본 재료가 들어간 양념을 바탕으로 굴과 새우젓, 사과와 토마토 등을 추가로 듬뿍 넣었다. 김씨는 “인터넷과 책으로 맛있는 김치 만드는 법을 연구하는 데만 수일이 걸렸다”라며 “사는 게 간단하지만 직접 담근 김치 맛을 따라가지는 못했다”라며 웃었다.
‘나만의 김치’ 맛 살리려면 신 김장족이 등장하게 된 데는 간편한 재료가 밑받침이 된 덕이 크다. 배추를 씻어 하루 이상 소금에 알맞게 절여야 하는 과정은 김장을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산지에서 이미 적당하게 절여진 절임 배추 판매가 보편화하면서 김장은 한결 간편해졌다. 여기에 고춧가루와 새우젓, 멸치액젓 등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기본 양념까지 나와 있다. 그러니 입맛대로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고, 보관만 잘해도 김장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12일 롯데마트와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절임 배추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배 이상 증가했다. 기본 김치 양념도 지역별로 따로 나온다. 무, 마늘, 부추, 고춧가루 등 기본 재료에 새우액젓을 넣어 시원한 맛이 특징인 중부식 양념과 멸치액젓 등 여러 젓갈을 풍부하게 넣은 남부식 양념이 있다. 유기농 절임 배추를 판매하는 식품업체 올가도 올해 10월 말까지 절임 배추 판매량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올가 관계자는 “절임 배추를 1시간 채반에 받쳐 물기를 제거 후 양념만 넣어 버무리기만 하면 손쉽게 김치를 담글 수 있다”며 “배추와 함께 양념도 2배 이상 팔렸다”고 전했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단장은 “김장에 익숙한 부모 세대로부터 김치를 가져다 먹는 세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필요에 따라 김치를 담그게 되면서 젊은 김장족이 늘어나고 있다”며 “절임 배추 등 간편 재료도 많아지고, 지역축제나 문화센터 등에서 쉽게 김치를 담그는 법을 알려주는 경우도 많아져 김장에 대한 부담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접 김치를 담근다면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보관할 때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조언했다. 유정임 김치 명인은 “절임 배추를 이용할 경우에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양념에 버무리는 것이 좋다”라며 “굴, 새우젓 등도 신선도가 높아야 김치의 맛이 잘 살아난다”고 했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할 때 속이 깊고 폭이 좁은 통을 고르는 게 좋다. 담을 때는 꾹꾹 눌러 담아 공백을 줄이고, 맨 위에 올리는 김치는 넓은 배춧잎이 위로 올라오도록 거꾸로 눕혀야 맛이 오래간다. 그리고 그 위에 배춧잎을 두세 겹 올려 공기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하다. 김치통의 80%만 김치를 채워야 김치국물이 역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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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