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정치한다’

2018-11-12 (월)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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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트럼프, 반 트럼프 대결양상을 띈 2018 중간선거가 끝났고 민주당이 하원을, 공화당이 상원에서 승리했다. 사전투표율은 4년 전 중간선거에 2,200만 명이, 올해는 3,300만 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높아졌고 6일 투표율도 49%로 평소보다 10% 포인트 올라갔다고 한다.

완전 대선 분위기로 중간선거가 치러진 것인데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100% 투표율을 올렸다. 6일 새벽 7시에 투표장으로 가니 선관위 관계자나 자원봉사자들이 비가 줄기차게 오는 새벽부터 몰려드는 투표인들로 정신이 없었다. 과거에는 투표장으로 들어서면 투표 관리인, 참관인,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다 반갑게 인사했는데이번에는 투표 후에 주는 ‘I Voted’ 스티커도 줄 경황이 없었다.

이번에 민주당이 8년 만에 연방하원에서 승리한 것은 여성들과 2030 젊은 층이 트럼프의 막말과 독주에 견제 심리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의 이민문제와 건강보험, 여성혐오에 반발한 사람들이 사명감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 표를 행사했다고들 한다.


“후보들에 대해 잘 모르는데, 주민발의안도 이해 못하고...” “그게 뭐가 중한데, 한인이 나와 투표하는 게 중요하지. 필요하니까 주민발의안도 예스, 노를 묻겠지.” 이날 이런 대화를 나누며 투표를 했는데 고작 한 표를 행사하고서 마치 우리가 정치를 한 것처럼 여기다니… 그래도 이번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구나 하는 것은 확실히 느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가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치르면서 내가, 우리 모두가 각각 정치적 의사를 표했고 그 결과를 본 것이 마치 선거를 즐긴 듯하다.

현재 미국의 경제는 안정적이다. 지난 10월 실업률이 4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정도로 고용수준이 좋아졌고 ’We are Hiring‘ 구인광고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중간선거 이후 의회의 권력 분산이 미국과 글로벌 주식 시장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주어 연말까지 미국경제도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6일 밤,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성공’이라고 트윗에 올렸고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일은 미국의 새로운 날이 될 것”이라고 결과에 서로 만족해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영 김이 한인여성 최초로 연방하원의원이 될 전망이고 원주민 여성 2명, 무슬림 하원의원 2명 등 여성의원이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성의 투표 참정권이 최초로 보장된 때는 1893년 뉴질랜드, 영국은 1918년, 미국은 1920년이다. 고대 아테네 시대부터 치면 무려 2,500여년이 지나서 획득한 투표권이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투표가 이뤄진 고대 그리스 시대, 당시 그리스 귀족회의에서 ‘아르곤’이라는 임기 1년인 집정관을 뽑기 위해 투표를 했다. 이 투표권은 귀족에게만 있었다. 여성, 외국인, 노예는 투표권이 없었다.

원래 왕이 다스리는 도시국가 아테네는 늘 전쟁을 치렀고 귀족이 기마부대로 활약하면서 귀족정치가 이뤄졌다. 이후 전쟁이 더 빈번해지자 갑옷과 투구, 창을 들고 보병으로 활약한 부유한 시민의 세력이 커졌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래에 있는 아고라 광장은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상징이다. 이곳에서 1년에 40여 차례, 9일에 한 번 정도 민회를 열어 나랏일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했다.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끈 페리클레스는 ‘몇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은 우리의 정치를 민주정치(Democratia)라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앞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한 힘의 균형 속에서 미국을 끌어갈 것이다. 그리고 2020년 대선을 향해 질주할 것이다. ’우리가 정치한다‘는 마음으로 잘 지켜 본 다음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때도 이번처럼 즐기는 선거, 민주주의의 완성을 보는 선거가 되기 바란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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