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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 성공’ 의 해악

2018-11-0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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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슈크렐리는 ‘미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남자’로 불린 젊은 기업가이다. 월가의 펀드매니저였던 그는 20대에 바이오업체 레트로핀과 제약업체 튜링을 창업해 성공한 기업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불명예스런 호칭의 대상이 된 것은 2015년 튜링 창업 후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림의 특허를 사들여 한 알에 13.5달러였던 약의 가격을 750달러로, 무려 55배나 올리면서부터였다. 슈크렐리의 탐욕에 비난이 들끓었고 연방의회는 이듬해 그를 불러 청문회에 앉혔다.

청문회에서 슈크렐리가 보인 태도는 미국인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수정헌법 5조를 들먹이며 답변을 거부했다. 또 의원들을 경멸하듯 계속 볼펜을 돌리며 히죽거렸다. 미국인들의 공적이 된 슈크렐리는 결국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돼 올 초 7년형을 선고받았다.

문제아로 성장기를 보냈던 슈크렐리는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와 성공을 구축했다. 그러다 스스로가 만든 덫에 걸려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기업연구가들이 ‘슈크렐리 신드롬’이라 이름 붙인 이런 패턴의 성공과 몰락 밑바닥에는 거의 예외 없이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 자리 잡고 있다.


도덕적 이탈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나 자각을 상실한 상태를 이른다. 이런 사람들은 범법과 일탈의 이유를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그럴 만하니까 그랬던 것”이라며 자신의 행위를 계속 합리화한다.

슈크렐리의 몰락은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기본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누리는 성공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한국사회를 끊임없이 어지럽히며 수많은 이들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는 현상은 바로 이 같은 ‘미성숙 성공’의 범람이다.

최근 터져 나온, 양진호란 이름의 웹하드 업체 소유주가 직원들에게 저질러온 엽기적 행위들은 성숙하지 못한 부와 권력의 독성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준 한 사례일 뿐이다. 그가 수단 방법 안 가리며 1,000억대의 큰 재산은 쌓았을지 몰라도 도덕적 자산은 완전 파산상태였다. 양진호가 손에 쥔 성공은 비수가 돼 많은 직원들과 주변사람들의 삶을 파괴한 후 이제 그 자신을 겨누고 있다.

툭 하면 터져 나오는 재벌 2,3세들의 갑질 또한 성숙과는 너무 거리가 먼 세습부자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이들은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른바 ‘자궁의 로토’를 맞은 선천적 성공계층이다. 하지만 운전 중인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뒷자리에서 발길질을 날리고 직원들에게 욕설과 함께 물 컵을 집어 던지는 행태에서 가진 것에 걸맞은 정신적 성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미성숙 성공’의 해악은 여러 유형으로 나타난다. 경제적 성공이나 물려받은 부를 앞세워 저지르는 갑질과 일탈은 ‘횡포형’이라 할 수 있다. 주변과 하급자들에게 물리적 위협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주지만 그 해악의 범위는 비교적 한정돼 있다.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것은 ‘가치 파괴형’이다. 사법농단의 주역들이 대표적인 집단이다. 대법원장, 그리고 대법원 판사와 법원행정처 간부였던 이들은 사법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어온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이다. 공부는 잘해 20대 초반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시에 합격하고 곧바로 법복을 입은 후 최고 위치에까지 오른 사람들이다.

법률지식을 앞세워 평생 남을 판단하고 정죄해왔을 이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행위가 옳고 그른지, 또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분별력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역시 어린나이에 출셋길에 올라 권력의 양지만을 밟아온 우병우, 김기춘 같은 ‘법기술자’들도 마찬가지다. 법 정신을 훼손하고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며 권력의 의중 헤아리기에만 골몰했던 판검사들이 국민들에게 안긴 고통은 재벌 갑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율곡 이이는 ‘중년 상처’ ‘노년 빈곤’과 함께 ‘초년 출세’를 인생의 3대 불행으로 꼽았다. ‘초년 출세’는 물리적 나이를 의미했다기보다 성숙이 뒷받침되지 못한 성공과 출세의 위험을 경계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온갖 곳에서 온갖 형태의 ‘미성숙 성공’이 범람한다는 것은 성숙사회로까지 가야 할 길이 아직은 멀었음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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