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정훈 기자의 앵콜클래식] 춘희

2018-11-02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미국에 오면 누구나 식성도 변하고 삶의 기호도 바뀌기 마련이다. 기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화의 차이,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북가주 (샌프란시스코)에 오니 따가운 햇볕이 맘에 들었다. 끈적끈적한 한국의 기후와는 달리, 공기도 건조하고 햇볕도 강렬하다.

한국의 가을하늘이 푸르다고는 하지만 이곳 북가주의 하늘과는 비교할 수 없다. 태양도 눈부시지만 태평양에 반사된 하늘은 한층 더 눈부시다. 사는 지역이 부촌 ‘San Francis Wood’ 라는 곳에서 가깝기 때문에 가끔 그곳을 드라이브하다보면 주택들 사이로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지곤 한다. 가끔 돛단배가 떠다니고, 뚜우하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화물선이 수평선 위를 지나며, 마치 하늘이 바다인 것 처럼 바다가 하늘인 것 처럼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곤 한다. 특히 구름이 드리워진 쪽빛 바다는 한국에서 보던 정서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마치 ‘이탈리아’에라도 와 있는 느낌이라고나할까. 사철 피어있는 꽃들의 화려함도 한국과는 사뭇 그 정서가 다르다. 마치 이곳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는 말 그대로, 수국과 라일락, 동백꽃 향기… 그 정경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요 영화의 한 장면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많은 영화들이 촬영되는지는 모르지만, 샌프란시스코야말로 머리에 꽃을 꽂고 청춘의 오페라 ‘춘희’가 보고 싶어지는 곳… 오페라 공연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곳에 온 덕에 오페라를 보는 기호(?)가 생겼고 또 ‘춘희’를 3차례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춘희’는 유명한 작품이고 또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누구나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지만 사실 ‘춘희’는 창녀의 이야기를 다룬, 당시로선 파격적인 오페라였다고한다. 그때문인지 이 이야기는 초연당시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되지 못했고 작곡가(베르디)는 조롱섞인 욕까지 얻어먹었다고 한다.

여주인공 역이 너무 뚱뚱했던데다 이야기의 내용이 (당시로선) 너무 파격적이었고 현실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왠지 사람들에게 드라마틱한 맛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춘희 춘희 하는 것은 이 작품이 지금에 와서 다소 달콤하게 세탁된 때문인데 오페라의 실패에 화가 난 베르디는 <베르디는 아내 주세피나가 이혼 경력이 있는 여자였던데다, 남자 문제가 복잡했었던 만큼 어떻게든 ‘춘희’를 통해 여인들의 비애를 옹오하려했다>

그후 대폭적인 수정을 가해 무대를 과거 18세기의 ‘카더라 시대’로 설정, 날씬한 여주인공으로 대체하고 여기저기 음악과 아리아를 고쳐 ‘때빼고 광낸’ 덕에 1년 뒤 2차 공연 때는 초연 때 보다 호평을 받았고 이후 점차 베르디를 대표하는 오페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성공을 바라보는 베르디의 심경은 그리 편치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춘희’의 현실성에 대한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오페라에서 주인공 가수의 노래보다는 기침을 콜록콜록하는 여주인공의 (가련한) 모습을 보기위해 오페라 공연에 간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로 어폐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경우에도, 솔직히 ‘춘희’를 처음부터 그렇게 좋아한 적은 없었던 같다. 어딘가 신파같은 내용도 그렇고, 지금도 솔직히 오페라의 CD를 켜놓고,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앉아서 들어 볼 용기는 없다. 다만 달콤하게 세탁된 지금의 ‘춘희’보다는 오리지날 ‘춘희’는 한번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해보곤한다.

‘춘희’란 한국말로 번역하면 ‘동백(꽃) 아가씨’라는 뜻이다.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 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대중 가요 ‘동백 아가씨’는 이 ‘춘희’에서 내용을 따온 것이었다. 엄앵란과 신성일이 나왔던 영화 ‘동백 아가씨’는 바로 ‘춘희’를 각색한 내용이며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는 동명 제목의 영화 주제곡이었다고한다.

당시 ‘동백 아가씨’를 취입했던 지구 레코드社는 이 노래의 제목이 매우 촌스럽다고하여 처음부터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이 노래는 의외로 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동백아가씨는 그 (신파적인) 촌스러움과 대중성이 우연히 맞아 떨어져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는데 김유정이 쓴 ‘동백꽃’이란 소설도 있지만 아무튼 대한민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도 바로(1948년 서울 명동의 시공간에서 있었던) ‘춘희’였다고 한다.

오페라 ‘춘희’는 당시 총 10회 공연동안 전석을 매진하는 대박을 터뜨리며 한국 오페라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게 됐다고 하는데, ‘춘희’는 현재에도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어느 부잣집 도련님과 창녀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Pretty Woman’ 같은 작품에서도 그려지고 있듯, 누구나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원래의 꽃말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때문인지는 의심스럽다. ‘춘희’는 대중성을 갖춘 성공적인 오페라로 평가받고 있지만 오리지날 작품이 외면받았던, 사실은 작품성과 대중성이 뒤바뀔 수 밖에 없었던 두 얼굴을 가진 오페라였다.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