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스카, 멀지 않은 기대

2018-10-31 (수)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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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작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다. “감독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가장 높고 한국영화의 현 수준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가장 앞줄에 설 만하며 한국사회의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영역을 해부하는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시선의 성숙도가 세계시민의 보편적 지성과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평가했다”는 것이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최종선정한 이유다.

이 감독이 ‘시’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영화 ‘버닝’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이 출연했고 세 청년이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 장르 영화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흥행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영진위는 천만관객 영화 ‘택시운전사’를 오스카에 출품했다가 후보 선정에서 또 한번 고배를 마셨고 올해는 다시 흥행여부와 상관없이 ‘버닝’을 선정 출품했다. 아카데미상은 칸, 베를린, 베니스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한국영화가 여전히 넘지 못한 산으로 남아있다.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 ‘밀양’에 이어 ‘버닝’으로 세 번째 오스카에 도전한다.


2016년 작가로, 올해는 감독으로 아카데미 회원에 위촉된 이창동 감독은 지난 주 LA를 찾아 오스카 프로모션에 돌입했다. 이 감독은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에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멀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다음번 한국영화를 위한 길, 이정표가 되니까 열심히 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영화도 소설도 친절하지 않은, 해설이 너무도 필요해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로는 볼 수 없는 명작이다. 이 감독은 “영화에 담은 ‘버닝’(Burning)은 말 그대로 ‘태우는 것’일 수 있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라는 작가지망생은 은유(메타포어)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상상, 혹은 망상을 한다. 그래서 종수에게 ‘버닝’은 때로는 분노의 폭발일 수 있고, 어릴 적 꿈의 모습, 욕망이 실현되는 것, 탐닉하는 아름다운 대상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세상은 청년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미래가 불안정하고, 반면 노력하지 않아도 많은 부를 이룬 같은 세대 청년이 있다. 이 감독은 이런 세상의 불공평함, 그로 인해 무엇 때문일지 모르는 분노, 무력감, 그리고 청년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하나의 미스터리로 풀어갔다. 그런데 왜일까. ‘버닝’은 청년들보다는 중·장년들이 공감을 표한다. 현 세대보다는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는 세대에게 어필하는 영화이지 싶다. 은유가 많은, 평점이 높은 영화 ‘버닝’으로 이창동 감독이 오스카의 문을 첫 번째로 열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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