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박함’ 으로 던져야 할 한 표

2018-10-3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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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신문에 실린 만평 하나가 눈에 띈다. 1% 수퍼리치들의 식탁풍경이다. 트럼프가 선사한 초대형 감세로 배불리 포식하는 부자에게 웨이터가 디저트 메뉴판을 내민다. 거기에 적힌 메뉴는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다. 만평의 내용은 서민들의 생명줄인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까지 손대려하는 수퍼리치들과 그 옆에서 열심히 시중드는 공화당을 꼬집고 있다.

하지만 이 만평의 내용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서민들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현실적 위협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 미치 매코넬 연방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중간선거가 끝나면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언론들과의 잇단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전반기에 오바마케어를 폐지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쉽게 생각한다며, 후반기에는 오바마케어 폐지와 함께 소셜시큐리티, 그리고 메디케어를 ‘미래 인구전망’에 맞춰 조정하는 어젠다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복지혜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매코넬이 복지삭감 필요성의 근거로 댄 것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국가채무다. 갈수록 불어나는 국가채무를 줄이려면 불가피하게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복지에 대한 적대감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매코넬의 주장은 편향적이고 기만적이다. 그가 그토록 걱정하는 국가채무의 주범은 바로 공화당이 줄기차게 밀어붙여온 부자감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감세로 인한 세수감소만 해도 향후 10년 간 2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립적 경제전문가들 뿐 아니라 의회예산국 또한 지나친 감세가 국가채무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의회예산국 보고서는 늘어난 채무의 향후 10년 간 이자비용이 그 기간 소셜시큐리티 지출 총액과 거의 맞먹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매코넬의 주장은 주범은 놔둔 채 애꿎은 사람에게 죄를 묻겠다는 어불성설과 다르지 않다.

결국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의 미래는 다음 주 중간선거 결과에 상당 부분 달렸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는다면 서민복지를 손보겠다는 공화당과 매코넬의 어젠다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리겠지만 공화당이 양당을 모두 장악할 경우에는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당신이 노후에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에 크게 의존해야할 형편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나도 자명해진다. 투표장에 나가 표를 던지는 것이다. 표로써 서민복지에 손을 대려는 정치세력을 저지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공식이 현실에서는 외면 받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4년 전 중간선거에서 연 가계소득 3만 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의 18~24세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고작 13%였다. 반면 연 소득 15만 달러 이상인 백인노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무려 73%에 달했다. 이런 ‘저저고고’(저소득층은 낮고 고소득층은 높은) 투표율 속에서 서민들의 목소리가 의정에 제대로 반영되길 기대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11월 6일 중간선거는 당초 민주당이 무난하게 하원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혼전양상으로 바뀌었다. 어느 당이 승리할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박빙구도일수록 당신의 한 표가 판세에 미치게 될 영향은 더 커진다.

선거는 승자독식의 레이스다. 표차가 어떻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개별 레이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체 의회구도에서도 다수당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선다. 박빙의 선거결과가 유권자들의 삶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앞으로 2년을 넘어 4년 혹은 그 이후의 정치지형까지 좌우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한 것이다.

투표에 참여하는 데는 여러 가지 동기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데 동참한다는 설렘과 자부심도 있을 수 있고 그저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에 떠밀려 표를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투표한다는 절박한 마음가짐으로 투표장에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오는 11월 6일이 바로 그렇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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