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타 2’

2018-10-30 (화) 김충규(1965-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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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2’

황하진‘무제’

목마름을 참은 만큼 낙타의 혹은 더 불룩하게 솟는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린
낙타만이 사막을 덤으로 얻어 횡단할 수 있는 법. 사막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인장들이 제 속의 어둠을 가시로 밀어내고 견디는 것처럼 낙타는 제 등의 혹으로
인해 견디는 짐승이다. 그의 유순함은 견딤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자는 들어라. 낙타의 두 눈이 오아시스로 출렁거리고 있다.
빠른 속도에 대한 극도의 경멸 끝에 낙타는 쉬엄쉬엄 걷고도 위엄을 터득했다. 사막에
뒹구는 고행자의 인골들, 그들의 죽음은 목마름에 대한 참지 못할 조급증과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스리지 않아 비롯된 것. 사막을 건너가려면 자신을 버리고 한 마리 낙타가
되어 터벅터벅 걸어야 한다. 등에 혹이 불룩하게 솟을 때까지 걸어야 한다.
낙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에 정직해지는 것이다.

김충규(1965-2012) ‘낙타 2’ 전문

긴 속눈썹과 착한 눈을 가진 낙타가 사막을 걸어가는 모습은 신비하다. 삭막한 모래의 땅을 살아가면서도 그가 짐승을 잡아먹지 않고 채식을 하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빙하기에 북미로부터 시베리아를 거쳐 아프리카로 갔다는 그들, 그 긴 고행의 길에서 그들은 오히려 유순함의 진수를 찾아내었다. 생의 고를 터득한 성자의 모습. 시인은 조급증에 걸린 현대인들에게 자신과 환경을 가혹하게 참아내어 마침에 환경과 하나가 될 줄 알게 된 낙타를 시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수행해내는 자들만이 이를 수 있는 유연한 도의 경지, 그것은 수백만 년 동안 인간진화가 끝내 이르지 못한 고(苦)의 신비인 것이다. 임혜신<시인>

<김충규(1965-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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