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긴 병에 효자 없다?

2018-10-27 (토)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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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아버님의 걱정거리였다. “항상 앉아있으니 운동하도록 해라” “소식하도록 해라” 등등... 90이 넘은 아버님은 층계도 뛰어서 다니시고, 밭을 만드시고, 혼자 개발하신 운동을 거르는 법이 없는 분이다.

그런 아버님이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병원을 자주 가보신 적이 없는 아버님이 앰블런스로 병원에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며칠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시더니 그 날 아침은 계속 토하셨던 것이다. 검사결과는 대장이 막힌 것이었다.

수술을 결정하고 나서는 병원 측에서 아버님의 사전 의료 의향서(Advance medical directive)와 위임장(Power of attorney)을 달라고 하였다. 만약 수술 후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경우 생명 연장을 유지할 것인가, 장례는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그리고 의사 결정은 누가 대신해 줄 것인가 등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몇 달 전 사무실에서 ‘프로보노’ 행사를 할 때 미리 준비한 것이 수술 전에 이처럼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의사는 간단히 내시경으로 할 수 있는 수술이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한 곳이 터지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다음 날 새벽 정식 봉합 수술을 하셨다. 그러는 과정에 출혈이 심하여 의식 회복을 걱정했었으나 기적적으로 서서히 깨어나셨다. 역시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 하신 분이라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했다. 의사들도 놀라 아버님께 건강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난 아버님의 건강하신 모습만 기억하기 때문에, 아버님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부모는 그런 것일까?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보살피고 지켜주시는 분, 당연히 천세는 살아야 되는 분 말이다. 그런 아버님의 팔에 주사바늘은 마치 전쟁터의 총알처럼 보였고 확연이 연약해지신 아버님을 보는 것만으로 힘이 들었다. 잘못하다가는 장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걱정을 하고 있는데, 눈을 뜨시고 대화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수술 후 의식을 찾으신 아버님께 내가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짜증을 내셨다. 나는 그 짜증이 그렇게 감사한 짜증인 걸 처음 느꼈다. “아버님이 살아나셨구나” 라는 안도가 날 감사하게 만든 것이다. 평소였으면 “왜 짜증을 내시나?’ 라고 불평했을 수도 있는데 그 짜증이 희망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토록 사람은 환경에 따라 같은 상황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아버님이 수술을 두 번 하셔서 병원의 입원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다. 거의 한 달간 사무실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 병원으로 들러 아버님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주말도 없이 사무실과 병원만 오가느라 나의 일상생활도 실종상태가 되어 버렸다. 조금씩 힘이 드는 것을 느끼며 이래서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처음에는 큰 걱정과 염려로 병원 출퇴근이 힘들지 않았고 회복되시는 모습만 뵈어도 좋았는데 시간이 길어지니 몸의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아프면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들다 말하는 부모가 없는데 부모가 편찮으시면 힘들어 하는 것이다.

자식은 몰래 돈을 쥐어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지만 부모님은 생색내고 드리지 않는가? 사람들은 종종 우스갯말로 부모가 젊고 능력 있을 때는 “내 부모”라고 하고, 늙고 병들면 “네 부모”라고 한다지 않나. 그만큼 현 시대는 부모조차도 감사의 대상이 아닌 필요의 대상으로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들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그 분들이 내게 주신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오늘도 자신의 건강보다는 자식의 건강을 걱정해서 밤잠을 설치시는 분들인 것이다. 오늘의 부모님 모습이 어느 날 나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힘들지는 않으신지 퇴근길에 따뜻한 국이라도 사가지고 들러야겠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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