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229) 제36대 Lyndon Baines Johnson 대통령③

2018-10-19 (금)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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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세계의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무한한” 면적의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그 땅속에는 석유를 포함한 자연자원 또한 “무진장”한 나라이다. 국토는 인구의 팽창과 함께 공장지대가 되고 농토로 개간되었고 목축업자들은 소, 양 등등을 거의 임대료를 전혀 내지않는 국토에서 방목하여 길러 왔었다. 경제의 성장과 함께 국유지를 임대하여 목재와 석유등 모든 천연자원들이 채광되었다.

처음부터 국토개발계획을 세워가지고 국토를 개발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가면서 원시적 부터 계속되어 왔던 많은 “자연”은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영구히 사라져가는 이 “자연”을 영원히 보존하여 후세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으나 항상 “산업개발” 주의자들에게 밀려 오고 있었었다.

자연보호주의자들은 6천만 acre 를 영구보존 자연으로 보존 시킬것을 주장하였으나 겨우 1964년에 이르러서야 “Wilderness Act of 1964” 법으로 9백만 acre 를 “국립공원” (National Park) 과 “국유림”(National Forest) 으로 보존시키게 되는 것으로 만족할수밖에 없었다. 이 보존구역네에는 도로나 dam 등 모든 건축이 금지되고 자동차나 엔진을 사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이 금지되며 hiking, camping 이나 승마등만 허용되어 원시자연이 최대한 영구보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 법이 입법될수 있었던 것은 LBJ 의 타고난 정치역량에다가 1964년의 그의 대통령 당선가능성이 차츰 높아 보이기 시작하자 그를 지지하는의원들도 많이 늘었던 이유도 있었었다. 그렇지만 그때 그가 아니었다면 얻어낼수 없는 먼 장래를 내다보는 입법이기도 하였었다.


1964년의 총선에서 압승하는 LBJ
1964년의 총선거가 닥아오고 있었다. 정부통령, 연방하원의원 전원, 연방상원의원 3분지1, 여러주의 주지사와 기타의 중요 선거직 공무원들이 11월초에 대거 선출되는 것이다. 공화당은 보수 우파적인 대통령을 꼭 당선시켜 진보 좌파로 “잘못” 나가기 시작하고 있는 정부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별르고 있었다. 1940년 이후의 대통령 선거때 마다 공화당내에서 주도권을 잡아온 자유주의 성향의 동부측 세력을 제압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보수쪽의 공화당원들은 강경파 보수주의자인 Arizona 주의 연방상원의원 Barry Goldwater 의 휘하에 규합하면서 민주당식 좌파를 허용하는 “껍데기” 공화당이 아닌 진정한 선택을 국민에게 제공 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해에 공화당의 진보쪽들은 미쳐 손을 쓸 겨를이 없이 우파 보수쪽에 밀려나 버렸다.

Teddy Roosevelt 대통령 이후의 공화당은 계속 보수적이 었었고 “지난번 선거때의 정강정책을 또 들고 나왔네!” 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근본적인 주장이 변경되지 않았었으며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들도 마찬가지 이었었다. Goldwater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중진의원중에서 뼈다귀있는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의원으로써 존경을 받고 있던 정치인이었었는데 발언의 수위와 강경성 때문에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나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아마 “원조 Donald Trump” 라고 평가될수도 있는 인물이었었다.

그의 주장은 강경하고 고집스러웁기는 하였었지만 허무맹랑하지는 않았었고 때로는 표현이 과격스러웠을 때도 있었으나 쌍스러웠거나 수준이하로 천박하지는 않았었다. 예를들어 그가 후보수락연설에서 ”Extremism in the defense of the liberty is no vice!” 라고 말한 명구는 선거운동 기간내내 비난거리가 되었었고 언론의 조롱을 받기도 하였었지만 편견이 없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고 보수적인 측면에서 보면 “진리” 일수도 있는 말이었다. 다만 그는 요즈음의 Donald 같은 Showmanship 이 없었었고 당시의 언론들이 Sensationalism 에 현혹되지도 않았었다.

그는 San Francisco 에서 있었던 공천대회에서 1차 투표로 무난히 공천되었는데
.진보측들과 화합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뉴욕주 출신의 보수파 William Miller 하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한후 극우 보수파들의 결집을 호소하였었다. 그는 선거운동중에도 전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하기 보다는 “Principles of Barry Goldwater” 를 주장하여서 공화당원들의 표조차 많이 잃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Goldwater 는 선거유세중에 과격한 발언을 하였다가 언론의 비판이 심해지면 다시 수정, 부연을 하였지만 언론들이 계속 비판적인 것을 보다 못한 그의 참모가 기자들에게 “Don’t print what he says, print what he means!” 라고 부탁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었다.

한편 Atlantic City 에서 모인 민주당 대통령공천대회는 LBJ 가 처음 부터 휘어잡고 있었는데 대회장의 관심의 초점은 누가 부통령으로 지명되느냐는 것이었다. 대의원들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마지막 순간에 LBJ 는 자신의 후임으로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를 하고있던 Minnesota 주의 Hubert Horatio Humphrey (HHH) 상원의원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하였다. HHH 는 원래 약사 이었다가 Minneapolis 시장을 지낸후 상원의원이 된 인물인데 낙천주의같은 호인적 인상에 언변이 아주 좋았었으며 민주당 자유주의 측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었다.
1936년의 FDR 의 2대임기선거 이후로 1964년의 대통령 선거때만큼 당락후보간의 지지도가 더 컸던 적이 없었었다고 한다.

LBJ 는 능수능난하게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그는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솔깃한 주장을 하였었다. 한참 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월남전에 대해서 사실상 확전을 은밀하게 준비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자제하고 있는것 같은 인상을 주었으며 국내에 당면한 문제들 중에서 그는 1964년의 민권법이 입법되도록 하였으며 빈곤층들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War against Poverty” 정책들을 집행하였으며교육을 위해 연방의 지원을 확대하였었다. LBJ 는 중도파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한편 Goldwater 는 국민들에게 공언하였던대로 LBJ 와 정면으로 상충되는 주장을 하였었다. 그는 이미 민권법, 핵무기 실험금지에 관한 국제조약, 거의 모든 Kennedy/Johnson 의 사회복지 정책들에 반대표를 던졌었다. 선거유세에서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국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정책들을 반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FDR 의 New Deal 정책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인정되어오고 있던 TVA 를 민간에게 팔것을 제안하였으며 Social Security System에 의문을 제기하여서 중산츰이하의 국민들 에게 불안감을 주었었다. 그는 장래 쏘련과의 전쟁이 불가피 하다고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자기는 NATO 동맹의 야전사령관들에게 전술용 핵무기의 사용재량권을 줄것을 제안한다고 말하였다. 선거운동이 계속되면서 Goldwater 의 지지도는 급강하 하였었다.

선거결과 LBJ 는 그때까지의 대통령 선거에서 최다 득표률인 61%의 지지를 받았다.
실제 국민투표수로는 LBJ 가 4,300 만표를 받은데 비해 Goldwater 는 2,700 만표를 받았 는데 선거인단 표수로는 LBJ 가 487표, Goldwater 는 52표를 받는데 그쳤었다.

이 선거가 준 message 는 분명한 것이었다. 미국국민 대다수는 연방정부가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해줄 적극적인 새로운 정책들을 세워줄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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