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합법이민자에게 ‘가난은 죄’

2018-10-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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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배척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불법이민 차단에서 합법이민 규제로 배척의 범위를 확대했다. 합법이민자가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경우 영주권 취득을 제한할 수 있다고 국토안보부가 새 방침을 발표했다. 합법적으로 허용된 복지 프로그램 수혜를 빌미로 영주권을 안 주겠다고 하니 이민자 배척을 넘어 징벌 수준이다. 이민자에게 가난은 처벌받을 죄라는 말과 다름없다.

국토안보부가 시행 의지를 밝힌 ‘공적부담’ 관련 조치는 새로운 규정은 아니다. 미국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민자를 입국 불허하거나 추방하고, 복지수혜로 공적부담이 된 이민자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19세기부터 있어온 이민법 조항이다. 그동안 없는 듯 묻혀있던 조항들을 빠르면 12월부터 적극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점점 각박해지는 것은 물론 경제와 상관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불법 합법의 모든 이민자들은 미국시민들과 똑같은 복지수혜 자격을 누렸다. 풍요로웠던 때는 문제되지 않던 것들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특히 백인근로계층이 실업/빈곤으로 내몰리면서 사사건건 문제가 되고 있다. 백인들의 분노가 트럼프 인기의 근원이고 보면, 중간선거를 앞두고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나오는 것은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새 규정은 생계비보조(SSI), 빈곤가정 임시보조(TANF) 등 현금뿐 아니라 푸드스탬프, 메디케이드, 섹션8 주거지원 등 비현금성 혜택을 받은 경우도 영주권 취득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아울러 나이, 학력, 건강, 재정상태, 기술 등을 볼 때 복지수혜 가능성이 높은 신청자에 대해서는 비자나 영주권 취득을 제한할 수 있다.

국토안보부는 새 규정 시행 시 신규 영주권 신청의 근 40%가 거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민자 숫자를 가능한 한 줄일 태세이다. 공적부담 조항에 걸리는 근 2,000만 이민자들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이민사회가 힘을 모을 때이다. 새 규정 중 부당하게 징벌적인 부분은 없는지 함께 연구하고 한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 앞으로 60일 여론수렴 과정에 적극 참여해 이민사회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다시 명심해야 할 것은 투표의 힘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법이다. 표로 목소리를 내야 정치권은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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