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권은 가난을 먹고 산다

2018-10-17 (수)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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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뜻하는 영어 단어 ‘포춘’(fortune)은 로마 신화의 포르투나(Fortuna)에서 유래했다. 포르투나는 운명의 바퀴와 함께 하는데 이 바퀴는 제멋대로 굴러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바로 이 바퀴가 소위 ‘운’이라는 궤적을 남기며 행운과 부를 결정한다. 결국 포르투나는 행운인 동시에 재산을 의미하게 됐다. 제멋대로 예측불가능하다는 전제는 그대로인 채 말이다.

이렇게 에둘러 이야기를 시작한 데는 바로 메가 밀리온을 비롯한 복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캘리포니아주 복권국에 따르면 어제(16일) 현재 메가 밀리언 잭팟 당첨금은 6억6,7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사회도 메가 밀리언 복권 구매 열풍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삼삼오오 그룹을 이뤄 복권을 공동 구매하고 당첨됐을 때를 가정해 배분 문제와 사용처를 두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하지만 이런 즐거운 상상 이면에는 복권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내 44개 주에서 판매하고 있는 메가 밀리언 복권을 포함해 승자독식 방식의 복권이 여러 개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 해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700억달러 수준. 복권의 판매수익률은 33%나 된다.

문제는 복권의 주 구매층이 빈곤층이라는 데 있다. 가난과 복권 구매 사이에는 꾸준히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소득수준 하위 3분의 1 계층이 전체 복권의 절반 이상을 사들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복권을 사기 위해서다. 결국 각 정부의 사회혜택 비용을 복권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다시 걷어들인다는 점에서 복권은 일종의 ‘역진세’에 해당되는 셈이다.

게다가 700억달러의 복권 수입은 정부가 푸드스탬프에 쓰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분석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기막힌 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쉽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라고 충고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복권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평균직장인의 급여 차이가 347배라는 소득의 양극화 현상 앞에서 ‘운’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고는 도저히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현실적 장벽 앞에서 복권 만큼이나 훌륭한 대안은 없으니 말이다.

가주 복권국의 광고 문구는 “최고의 꿈이 이뤄지기를”이라며 꿈을 자극한다. 하지만 복권의 당첨금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노력의 대가를 믿는 우리의 희망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도 그만큼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 메가 밀리언 잭팟 당첨자가 나와 ‘최고의 꿈’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아니면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이 더 늘어난다 하더라도 복권은 가난을 먹고 사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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