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지중해에는 뮤렉스라는 바다 달팽이가 살았다.
이 달팽이를 잡아다 끓이면 자줏빛 염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물감이 햇볕을 쪼이고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염료로 물을 들이면 시간이 갈수록 윤이 나고 색이 깊어진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물감을 다른 것보다 선호했고 따라서 가격도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이 물감을 사용한 옷은 부자나 귀족이 아니면 입을 수 없었고 자줏빛 토가는 로마의 개선장군과 황제가 입는 옷이 됐다.
라틴어로 “자줏빛 옷을 입다”는 “황제로 등극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자줏빛 옷을 입는 것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보다 상위 개념인 셈이다. 페니키아인의 거주지인 티레의 이름을 따 ‘티레의 자줏빛’으로 불린 이 색은 훗날 유럽 왕실과 교황의 상징이 된다.
고대 민족 가운데 이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던 것은 페니키아인들뿐이다. 이들은 이 염료를 만든 후 말려 가루를 가지고 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장사를 했는데 이 분말 가루의 가격이 같은 무게 금값의 여러 배가 넘을 정도로 비쌌다.
무역상으로 이름을 날린 페니키아인의 주력 상품이 바로 이 물감으로 ‘페니키아’라는 말 자체가 ‘자줏빛’이라는 뜻이다.
지중해 연안 온갖 민족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던 페니키아 인들은 이재에 밝고 실용적인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다민족을 상대하면서 이들 말과 문자를 다 배울 필요 없이 이들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면 장부 정리와 계약서 작성에 편리하다는 아이디어의 착안했다.
모든 서양 문자의 기초가 된 알파벳은 이렇게 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알파벳은 서양 문자의 조상만이 아니다. 아랍 문자와 투르크 문자 등 중동지방 표음문자가 거의 모두 페니키아 알파벳에 근거를 두고 있다.
투르크 부족 일파에 위구르 족이라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이들 나라에 13세기 초 징기스칸이 쳐들어 왔다.
징기스칸은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표음문자의 편리함을 발견하고 몽골어를 적을 수 있는 문자 작성을 지시했다. 몽골 알파벳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몽골이 침공한 나라는 위구르뿐만이 아니었다. 고려도 수차례 몽골의 침입을 받았으며 100년 동안 그 영향권에 있었다. 여말 선초 많은 고려와 조선의 학자와 정치인들이 몽골말을 할 줄 알았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원나라의 고위관리인 천호 벼슬을 지내며 몽골어에 능통했으며 울루스부카라는 몽골 이름도 있었다.
집현전 학사로 한글 창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신숙주도 몽골어 전문가다.
한글을 만들면서 세상에는 중국어 같은 뜻을 적는 표의문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을 적는 표음문자라는 것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몽골 문자로부터 얻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몽골 문자 가운데 파스파 문자에는 한글의 ㄱ, ㄷ, ㅂ, ㅈ, ㄹ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문자들이 있다.
해외에서는 게리 레드야드 교수를 비롯한 이 문제 전문가들이 한글과 몽골 문자의 관련설을 주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글 창제시 몽골 문자를 참고했다 해도 전혀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잘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들어 한글의 독창성을 주장하는 정광 고대 명예교수 등도 조심스레 한글과 몽골 문자의 연관성을 시인하기 시작했다.
원래 페니키아 문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를 단순화시키고 뜻 대신 발음을 중심으로 한 문자로 재탄생시켜 알파벳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페니키아 문자에는 모음이 없었다. 페니키아 문자 중 일부를 모음을 표시하는 기호로 바꿔 지금처럼 자음과 모음이 함께 있는 알파벳으로 만든 것은 그리스인들이다.
그리스인을 비롯한 서양 누구도 이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수많은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한글은 서양의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듯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난 언어체계다.
한글을 창제할 때 몽골 문자를 참고했다 해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종 즉위 600주년의 한글날을 맞아 한글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
<
미주본사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