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당신
2018-10-08 (월)
이수연 UC버클리 학생
이수연 UC버클리 학생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야속한 병을 꼽으라 하면 그것은 치매라 하겠다. 아직 많고 많은 짓궂은 병에 시달려보지 않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나의 조부모님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나셨다. 나와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이었다.
건강하셨을 적 남에게 기대는 법이 없었고 흐트러지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으셨던 할아버지께서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잦은 실수를 하실 때면 먹먹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품었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것도 모자라 나의 존재도 점점 잊게 되는 병이라니. 병을 앓는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으로서 치매는 고약한 병이었다.
영화 ‘스틸 앨리스’(2014)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치매를 앓는 환자의 입장으로 영화를 서술한다. 줄리앤 무어가 연기하는 앨리스는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여성의 삶을 살고 있었다. 단란한 가정 속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저명한 언어학 교수인 앨리스는 꼼꼼한 성격답게 가정도 일도 모두 현명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답지 않게 사소한 걸 잊기 시작하며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에 병원을 방문하게 되고, 자신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한 적 없던 앨리스는 기억이 사라지는 자신의 존재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잔잔했던 가정에 자신이 돌덩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을 견디지 못한 앨리스는 미래에 자신에게 보일 동영상을 찍는다. “안녕, 앨리스, 네가 이 영상을 보게 됐을 땐 더 이상 아무런 질문에 응하지 못할 정도까지의 상태일 거야.” 자신에게 인사하며 시작하는 동영상 속 앨리스는 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죽는 방법을 알려준다. 치매를 앓는 이의 절박한 심정이 보인 장면이었다.
사실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치매라는 병을 미워했지, 어차피 기억을 잃는 병을 앓는 당사자가 병을 미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조부모님을 앨리스에 대입해보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마음으로 병을 미워했는지 깨달았다. 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자꾸 묻고 보채기보단 묵묵히 기억을 되짚어주는 방법으로 위로해드릴 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여전히 앨리스‘라는 제목처럼 온전하든 온전치 않든 여전히 당신은 나에게 사랑스럽게 기억된다고 말해드릴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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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UC버클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