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녀가 학자금 빚에 시달린다면

2018-10-05 (금)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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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 빚의 굴레…사회 출발점이 ‘0’이라도 됐으면…” 얼마 전 한국의 한 일간지 특집기사제목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힘겹게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이 안 돼 학자금 빚을 못 갚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또 다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의 연속, 슬픈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의 학자금 대출액은 2010년 2조7,600억원을 기록한 뒤 계속 줄고 있다. 2012년부터 가계소득과 연계돼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이 본격 도입된 덕분이라고 한다.

미국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올 2분기 학자금 부채 규모는 1조5,200억달러, 학자금 부채를 떠안은 사람은 4,400만명, 1인당 평균 4만달러의 빚을 진 셈이다. 2012년 중반 1조 달러를 돌파한 지 6년 만에 5,000억달러 이상 늘었다. 지난해 말 13조 달러를 넘어선 가계부채 중 학자금대출 비중은 모기지(8조9,000여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학자금 부채가 급속도로 불어난 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있다. 경제위기로 고용이 줄자 일자리를 잡기 위해 학위를 따려는 수요가 급증했다. ‘학위’가 있어야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대학 문을 두드렸다. 저소득층은 상위 계층으로 진입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다.


대학 진학 수요가 늘면서 그렇지 않아도 오름세를 유지하던 등록금은 더 치솟았다. 1990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등록금은 매년 6%씩 인상됐다. 26년 동안 5배나 올랐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의 2배 이상이다.

게다가 사립대들은 신입생 유치를 위해 앞 다퉈 무리한 시설 투자를 하고 교수 등 교직원의 연봉까지 올려주면서 등록금 인상을 부채질했다. 그 결과 하버드·예일·프린스턴·컬럼비아 등 아이비리그의 경우 등록금에 기숙사비와 교재비를 합치면 1년 총 학비는 7만달러를 훌쩍 넘는다.

상대적으로 학비가 저렴했던 주립대 학비 부담도 커졌다. UC 버클리의 경우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을 합친 일 년 총 학비는 3만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크게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주의 UC에 대한 지원은 1990~2004년 사이 37%나 뒷걸음질 쳤다. 여기다 미 전체 대학생 1,800만여명중 40% 가량이 재학하는 커뮤니티칼리지에 대한 지원이 줄어든 것도 등록금 부담을 높인 요인이 됐다.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낭만이 가득해야 할 캠퍼스에는 안타까운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끼니 해결을 못해 굶는 학생이 늘어나는가 하면 렌트비가 버거워 노숙하는 대학생도 등장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뉴욕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의 30%, 4년제 대학생의 22%가 결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뿐 이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도 눈에 띠게 늘었다. 대학생 3명중 한 명꼴로 학교를 중퇴하거나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6년 안에 졸업하는 학생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 등록률은 상승했지만 졸업률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안간힘을 쓰고 대학을 졸업해도 원하는 직업을 갖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대졸자들이 불완전 고용 상태에서 엄청난 학자금 빚에 시달리는 것이다.

학자금 부채는 도미노처럼 줄줄이 더 큰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보고서는 대학 졸업생들이 학자금 부채에 시달리면서 결혼과 출산까지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더 일찍 학자금 준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인들의 경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한 생명보험사가 인종별 학자금 저축액을 조사한 결과 한인가정의 평균 저축액은 1만7,343달러에 불과했다. 미국 평균보다 2,000달러가량 적었으며 인도계보다 약 8,000달러, 중국계 보다 1만2,000달러 가량이 적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한인가정의 40%가 자녀 학자금을 위한 저축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금 부채 문제는 경제 전반에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 자녀가 대학 졸업 후 빚더미에서 허덕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학자금 준비 플랜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해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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