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227) 제36대 Lyndon Baines Johnson 대통령 ①

2018-10-05 (금)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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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coln (16대) 이후 암살된 대통령들인 James A. Garfield (20대), William McKinley (25대), John F. Kennedy (35대) 등을 승계한 부통령들중 Andrew Johnson, Chester A. Arthur, Teddy Roosevelt, Lyndon B. Johnson등은 Andrew Johnson 과 Arthur 를 제외 하고는 암살된 대통령들 못지않은 우수한 대통령들이었다.

우리말에 “불행중 다행” 이란 격려의 말이 있지만 충분하게 준비된 부통령이 대통령의 암살로 극도의 혼돈에 빠진 나라를 차질없이 지속해 나갈수 있다면은 더 이상의 “불행중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Teddy Roosevelt 는 깊은 땅속에 묻혀있던 단단한 바위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금강석처럼 최고로 훌륭한 젊은 대통령이 되었었지만 Teddy Roosevelt 를 포함한 네명의 부통령중에서 LBJ 만큼 가장 의정경험이 많고 정치에 능숙하였던 사람은 없었었다. 그는 도공이 고려 청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손아귀에서 진흙을 다듬듯이 국회를 주무를줄 아는 능란한 정치인이었었다. JFK 가 구상했던 도자기들은 LBJ 라는 도공에 의해서 국회라는 가마솥 에서 구워져서 나왔었다.

LBJ 는 40여년간의 의정활동에서 국회의 “Horse Dealer” 라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요즘은 used car dealer 들이 비슷한 소리를 들을때가 많은데 옛날에 Horse Dealer 는 비루먹은 말을 명마라고 둔갑해서 파는 재주를 가진 “허풍선이”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비속어 이기도 하였지만 역설적으로는 자기에게 맏겨진 직무를 혼신적으로 완수하는 적극적인 사람을 의미 하기도 하였었다. “나는 모든 일들을 확신을 가지고 추진한다”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LBJ 는 거의 5백여명에 이르는 하원의원들의 First Name 도 다 기억 했었다고 하며 상원의원들은 당소속 상관없이 다 친구 같았었다고 한다. 동료의원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잘 도와주기도 하였었다고 한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이 있을때에는 만나는 의원마다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몇시간을 계속 딸아다니며 설명, 설득, 애원, 협상, 협박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마치 상대방을 최면술에 걸리는것 처럼 녹초가 되도록 만드는 “Treatment” 라는 별명이 붙은 집요한 노력으로 자기의 법안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열성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보고자 했던 LBJ 는 대통령후보 경쟁에서 JFK 에게 패배하였 지만 그는 장래를 내다보고 새까만 후배의 부통령직 제의를 받아 드렸었다. 전략상의 이유로 LBJ 와 정략결혼을 했던 JFK측 camp 는 LBJ 를 부통령이라기 보다는 잠재적인 정적으로 생각 하였으며 대통령의 inner circle 에 적극적으로 참여 시키지 않았었다. 특히 JFK 의 최측근 참모장으로서 bull dog 같은 역활을 해왔던 “어린” Robert F. Kennedy로 부터 LBJ 는 노골적이고도 적대적인 서글픈 대접을 받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필자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일반적으로 독재주의 국가들의 독재자들 보다 인물이 좋고 관상도 좋다고 생각한다. 영국 수상들의 얼굴들이 미남들이 많다고 하는데 여성들이 미남에게 투표를 해주기 때문이라는 조금 우스개스러운 주장이 있다. 필자는 관상만으로 보면 MacArthur 장군이 가장 “장군스럽게” 생긴 인물이라고 했었는데 John F. Kennedy 로 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Donald J. Trump 까지 지난 55여년 동안 겪어본 열명의 대통령중에서 LBJ 는 가장 “대통령스럽게” 생긴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미남적인 얼굴로만 본다면 Ronald Reagan 대통령도잘 생긴 인물이었지만 “배우스럽게” 잘 생겼다는 편견을 지울수가 없었었는데 Lyndon B. Johnson 은 “Texan” 다웁게6’3” 의 알맞는 거구로 체격적으로 위엄이 있었으며 진실성이 풍겨나는 정치를 “천직”으로 생각 했던 대정치가 이었으나 요즈음의 아무개처럼 “황제”같이 거의 치외법권적으로 국민들 위에 군림 하지는 않았었다.

미국은 “표준말” 이라거나 표준발음이 없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Johnson 의 특유한 Texas 식 “사투리적” 발음은 그를 촌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기 보다는 도리어 진실성있게 말하는것 처럼 느껴지게도 만들었다. 마치 한국에서도 충청도 사람이 부드럽고 느린 말씨로 “아 그것이 이런것이 아닌 개비유!” 라고 말하면 더 진솔하게 들렸던 것처럼. 근대의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Teddy Roosevelt 나 FDR 급과 아마 맞비교할 정도는 못되었겠지만 Johnson 은 남부출신 다웁지 않게 “We shall overcome!” 이라는 구호를 같이 웨치며 흑인과 불우한 소외계층들의 민권향상에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며 “남부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노력했던 정치인이 었었다.

LBJ 는 미국을 “The Great Society” 로 만들겠다는 주장을 하며 Medicare 를 포함한 국민건강 보장제도, 교육을 위한 국가지원, 환경오염방지, 각종의 소비자보호정책, 낙후지역개발, 서민주택과 임대주택의 건설, 차별적 이민법 개정, 미국사상 초유의 민권보장등의 국내정치에 큰 업적을 이루웠다. 2백여년간 서북부 유럽인들에게만 개방되었던 이민 Quota 제도를 완전 개혁하여 전세계인들에게 이민을 허용하였고 재미 우리동포들 모두가 그때의 이민법개정으로 미국에 이민을 올수있게 되었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월남 국민들의 열망을 이념의 차이때문에 잘못 판단하였고 미국이 참전 했어야만 하는 이유를 누구에게도 분명하게 설득할수 없는 처지에서 확전에 확전을 해오다가 결국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마감할수 밖에 없게되었던 대통령이기도 하였다.

정치라는 “천직”에서 “해고”된 그는 불과 몇년안에 65세라는 “젊은”나이에 쓸쓸하게 타계하였다.
LBJ 는 부인 Lady Bird Johnson, 큰딸 Lynda Bird Johnson, 두째딸 Luci Baines Johnson 과 함께 전부 LBJ 라는 동일한 이름약자를 썼었다. 부인이 태어났을때 병원의 간호사들이 귀여운 아이라는 의미로 “Lady Bird” 라고 불렀던 것이 아주 이름이 되어 버렸었다고 한다. 부부의 금실이 좋았으며 LBJ 의 긴 정치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꾸준한 격려를 해왔던 Lady Bird 는 미국 역사가들에 의해서 다섯째 안에 드는 Best First LADY 로도 뽑히는 인물이다. Jackie Kennedy 가 콧대가 높고 개성이 강한 First Lady 의 상징이었다면 Lady Bird 는 다소곳이 남편의 뒤를 따르며 남편의 정치활동을 위해 혼신 했던 “구시대적” 대통령부인으로 평판이 났었다고 한다.

Lady Bird의 여유있던 부친으로부터 받은 자금이 Lyndon 의 하원의원 초선때 요긴 하게 쓰여졌으며 남편이 정치초년병 시절에는 넉넉치 않은 하원의원의 년봉으로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하는 수많은 기자들과 손님들을 직접 대접하는 솜씨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녀의 가장 큰 공헌은 Lyndon 이 Texas 연방 상원의원으로 있을때 그녀가 부친으로부터 받은 많지않았던 유산으로 당시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아가고 있던 Texas 유일의 TV 방송회사를 인수한 것이었다.

Lady Bird 는 Texas 에 TV회사를 직접 경영자로 몇년간 운영하여 엄청난 기업으로 키워서 대여성 사업가가 되었고 대규모의 목장주도 되었다. 두딸을 기르는 마음씨 착해보이는 아주머니에게 탁월한 기업경영주의 자질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며 그녀의 TV 방송국 소유자로서의 성공은 LBJ 의 정치활동이 활발해 질수 있던 기초가 되었을 것이며 그가 정치부패에 초연할수 있는 여유를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는 TV 방송사업 성공에 대해서 “우연히 적절한 시기에 작은 투자를 한것이 성공한것 뿐이며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의 공로가 크다” 라고 겸손하게 얘기 하였다고 하지만 큰손을 가진 덕스러운 여성이었음이 분명하다.

<조태환/LI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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