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숲을 걸으며

2018-10-04 (목) 윤영순 / 매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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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걷기보다 쉽게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또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누구나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새벽 산책길을 걸어보라.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기 위해 배를 한껏 부풀리면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을 타고 숲 내음이 온몸을 파고든다.

한국에 있을 때 산세가 좋고 한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검단산을 산행하곤 했다. 봄이면 군락을 이룬 밤나무 숲에서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것 같은 밤꽃이 사방에 향기를 날리고, 가을 추석이 다가올 때쯤이면 주먹만 한 밤송이가 툭툭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다.


가시에 찔린 것도 모른 채 밤송이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윤기가 자르르한 알밤을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내려오곤 했다.

집 주위 숲속에서 자주 만나는 사슴 식구들이 있다. 우아한 자태의 키 큰 사슴도 보고, 알록달록 귀여운 꽃사슴 아기도 보게 되는 날은 보너스 받는 기분이다. 사진 한 컷 찍으려고 살금살금 가까이 다가가면, 순한 눈망울이 한껏 경계하면서도 폼을 잡아준다.

해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로 숲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실수도 있겠지만 빽빽이 자라고 있는 울창한 숲속의 나무와 나무가 서로 부딪히며 일어나는 산불도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타는 숲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불이 온 숲을 태울지라도 남은 재를 자양분 삼아 더 울창한 다음 세대의 수림이 만들어지겠지”라고.

<윤영순 / 매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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