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세대가 슬픈 이유

2018-10-02 (화) 방준재 /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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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5년에 태어났다. 소위 ‘해방둥이’이다. 그리고 생후 5년 뒤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역사 중 가장 처참한 사건을 어린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다.

1950년 여름, 우리 식구는 진주 남강변에 있는 ‘뒤벼리’라는 친척집에 피신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진주의 하늘을 새까맣게 B-29 폭격기가 덮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 떼가 지나간 다음날 고향 진주는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 후 몇 년 간은 자라나는 학생들의 일상생활, 그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 가고 운동 하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 날리고 학교대항 배구시합에 다니고 등등….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4.19가 터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떠나던 날, 도로변에 줄서있던 시민들은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당시 이 광경을 신문을 통해 보았다.

그때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생각했다. 권좌에서 몰아낼 때는 언제고, 망명길에 나선 대통령을 배웅하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시민들, 두 사실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사회가 어수선하듯, 학내도 질서란 없었다. 학생 깡패끼리 싸우질 않나, 화장실에 가기도 겁날 지경이었고 선생님들께 폭력을 휘두르질 않나 어수선 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5.16혁명이 일어났고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부유한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런데 1997년 IMF가 닥쳤다. 잘나가던 대한민국이 깡통 차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나의 친구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50대 초반, 한창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밀려났다. ‘사오정’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20년 세월이 또 흘렀다.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새 정권이 들어서고 나의 친구들은 멀뚱멀뚱 서로 쳐다보며 말도 제대로 못하는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 슬픈 세대이다.

<방준재 /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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