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분석 아닌 감성으로 대중주의에 맞서기

2018-09-24 (월)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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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는 그것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도움이 되곤 한다. 지난 주말 키예프에서 대중주의(populism)와 토착주의(nativism)의 발흥에 관해 보노와 나눈 대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 겸 운동가이자 자선가인 보노는 우리가 맞닥뜨린 것과 동일한 현상을 주로 유럽에서 목격하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형체가 없으면서도 본질적인 무언가에 집중되어 있다.

보노에 따르면 민족주의자들과 극렬주의자들이 전파하는 어둡고, 비관적인 견해에 맞설 유일한 방법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견해를 갖는 것이다. 그가 속한 지역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자면 “유럽은 고루한 집단이고, 관료주의 체제이자 기술적인 프로젝트라는 주변의 시선을 털어내고 웅장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디어라는 본연의 모습으로 이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노의 밴드인 U2는 앞으로 예정된 공연 도중 무대 위에서 유럽연합(EU) 깃발을 펼쳐드는 순서를 갖는다.

보노는 최근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은 정서가 되어야 할 사상”(Europe is a thought that needs to become a feeling)이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시도하는 중이다.

보노에게 유럽은 한때 다툼을 벌이던 국가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국가의 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보노는 기고문에서 “유럽에 대한 그 같은 아이디어는 노래로 불리어지기에 충분하며, 유럽연합의 밝고 푸른 깃발은 당당하게 나부껴야된다”고 말한다.

보노는 요즘 유럽은 인기가 없어 “애를 써서 파는 물건”과 같다고 시인한다.

오늘날 유럽 대륙에는 대중주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중주의 세력은 이미 헝가리,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집어삼켰고, 독일에서 스웨덴에 이르는 유럽 여러 지역에서 꾸준하게 입지를 키우고 있다.

대중주의를 부추기는 연료는 어느 곳에서건 동일하다: 자신과 다른 이방인들과 외국인들을 향한 적대감이다.

지난 4월 NPR의 조앤나 카키시스는 헝가리의 사회학자 엔드레 시크에 관한 보도를 내보냈다. 시크는 난민신청자들을 허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헝가리 국민을 대상으로 전국규모의 여론조사를 실시한 인물이다.


조사결과 헝가리 국민은 루마니아인과 중국인, 아랍인과 같은 특정집단의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강력한 저항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크는 조사대상자들에게 피레지인 난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피레지인은 그가 임의로 만들어낸 가상의 인종그룹이다. 시크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에 응한 헝가리인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피레지 난민을 수용하는데 강력히 반대했다고 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헝가리 국민이 갖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의 형태는 지극히 고전적”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고,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혐오 한다’는 것이다. 시크는 이를 “우리 안에 있는 야수”라고 말했다.

보노를 만났을 당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새로운 저서인 ‘정체성: 품위에 대한 요구와 적대감의 정치(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를 읽고 있었던 중이었기에 그의 메시지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후쿠야마는 정체성이란 품위를 지닌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심리적 욕구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근래 수십 년 동안 (흑인, 히스패닉, 게이 등) 핍박받던 소수집단과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잊혀 졌다고 느끼는 근로계층 백인들은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직접 나섰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자랑스레 선포했다.

후쿠야마는 “정체성의 정치학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포용하고 다른 그룹들을 통합하는 광범위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는 EU 창설자들이 법, 규칙, 관세 등 프로젝트의 기술적 측면을 구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사람들이 이성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감성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이유에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유럽의 실질적인 아이덴티티를 육성하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반 대중주의 세력은 편협한 인종적, 종교적 아이디어와 가치 대신 미국인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가치에 중심을 둔 광범위한 아이덴티티를 창조했다.

따라서 우리는 동화를 중시하고 미국적 아이덴티티를 기념하는 한편 미국인임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들에 더욱 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연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 당면한 도전은 미국이 마주한 도전보다 훨씬 크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외국인들에 대한 불신이 반드시 유럽에 대한 거부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족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조차 EU에 대한 지지는 대단히 높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서베이에서 폴란드 국민의 71%는 EU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과 스페인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헝가리 국민의 61%도 갖은 의견을 보였는데 이 역시 프랑스, 스웨덴과 벨기에에 비해 높다.

문제는 이것이 깊숙한 정서적 유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 이들은 EU보다 자국에 3-4배나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국민이 자랑스러워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은 놀랄만한 다양성의 달성이다.

독일 언론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나는 우리의 방언, 우리의 전통, 그리고 우리의 특성과 같은 여러 가지 차이를 좋아한다”고 쓴 보노는 “그 같은 차이는 처칠이 ‘확대된 애국심’이라고 부른 것, 즉 둘 중 어떤 하나가 아니라 아일랜드인이자 유럽인, 독일인이자 유럽인이라는 복수의 충성, 여러 층의 정체성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나는 여전히 확신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획일성을 요구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애국심이라는 단어를 탈취 당했다. 그러나 진정한 애국자들은 동종성 보다 통합을 추구한다.

그것을 재확인하는 것이 내겐 진정한 유럽의 프로젝트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미국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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