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리 천장 깨부수기

2018-09-21 (금) 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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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LA타임스에 실린 기고 한 편에 눈길이 갔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연방 법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한인 2세 존 유 UC 버클리 법대 교수의 글이었는데, 그 주장이 상당히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내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맹목적으로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는데,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화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 글에서 유 교수는 하버드대의 아시안 지원자 차별 논란과 관련, 민주당이 선호하고 있는 대입시 인종 안배 정책이 아시아계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나아가 자영업 및 개신교 비율이 높은 아시안들의 경우 감세 정책과 보수적 기독교 친화적인 공화당을 지지해야 이득이 될 텐데 왜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민주당 선호도가 높은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하버드대와 예일대 법대 출신으로 연방 정부에서 법률이론가로 명성을 날린 전형적인 아시아계 엘리트 인재다. 그가 주요 일간지에 “아시안들이 똑똑하다고들 하지만, 정말 어리석기도 하다”는 다소 도발적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기고를 한 것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정부 당시 포로 고문과 비밀도청에 대한 법률적 토대를 제공해 논란이 됐던 이력을 감안할 때 강성 보수 논객인 그가 이처럼 정파적인 논조를 펼치는 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시안들이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미국사회에 알게 모르게 만연돼 있는 소수계, 특히 아시안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가져오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연방의회 진출에 도전하고 있는 뉴저지주 연방하원 3지구의 한인 앤디 김 후보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국내 아시아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민주당 결선 주자로 2선의 공화당 현직인 탐 맥아더 의원에 도전장을 던진 앤디 김 후보는 최근 지지율 조사에서 맥아더 의원에 2% 가량 앞서며 박빙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맥아더 의원은 연방 하원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열렬히 지원하는 의원들 중 한 명인데, 공화당 우세 지역인 이 지역구 내에서도 반 트럼프 정서가 커지고 있고, 선거일을 이제 한 달 반 정도 앞둔 상황에서 남은 선거자금 실탄이 김 후보가 훨씬 많아 그가 역전승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화당 측에서 김 후보에 대한 ‘네가티브’ 선거광고를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메일로 뿌려진 이 광고물이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에 가득 찬 ‘인종차별’적 내용이라며 민주당 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얼음 위에 놓인 생선들의 사진과 함께 ‘앤디 김 후보가 뭔가 수상하다’는 문구가 쓰인 문제의 광고에 김 후보의 이름과 ‘수상하다’는 단어를 아시아계를 연상시키는 글자체로 써서 김 후보가 아시안임을 은근히 비하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지적이다.

광고에 사용된 서체는 중국계 업소들의 간판이나 아시안 영화들에 많이 사용되는, 붉은 색깔에 체가 굵은 이른바 ‘찹수이’ 폰트였는데, 한인인 김 후보를 겨냥하면서 중국계와 싸잡아 마치 ‘아시안들은 믿을 수 없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은 반대로 민주당 측이 공화당 소속 한인 후보를 상대로 인종차별적 공격을 할 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앤디 김 후보와 함께 이번 선거에서 연방하원 입성을 노리는 또 하나의 한인 영 김 후보도 상대 민주당 후보의 네가티브 공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 비중이 워낙 높아 사실상 미국이라기보다는 국제도시에 가까운 LA에서는 잘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국 전체로 보면 1세 이민자들은 물론 2세, 3세들까지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이유만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편견과 차별의 덫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올해 연방 센서스 조사 분석 결과 미국에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가 2010년 이후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소수계로 부상했다. 하지만 수적 증가는 힘을 키우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머리 위에 드리워진 ‘유리천장’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결국 더욱 많은 투표 참여로 ‘표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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