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를 깨우는 것

2018-09-15 (토) 김완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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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을 기시감(旣視感. 데자뷰)이라고 한다. 반대로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모두 처음 보는 것으로 느끼는 것을 미시감(未視感. 자메뷰)이라 한다. 이따금 데자뷰에 대한 경험들을 토로하는 이는 있으나 자메뷰를 말하는 이는 별로 본적이 없다.

무신론자인 내가 지인의 부탁으로 하와이 한인 사찰 한글학교에서 일요일이면 한인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일종의 사명감으로 봉사하는 일인데 벌써 1년이 넘었다.

그 한글학교 학생 중에 크리스틴이란 11학년 여학생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2인데 아버지는 중국계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다. 이 아이는 공부 잘하고 발랄하고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는 조금은 머슴애 같은 아이였다.


곱상한 얼굴과 달리 사내 녀석같이 씩씩한 크리스틴이 3주 만에 한글학교에 나왔다. 그동안 심한 감기 몸살로 아파서 못 나왔다. 그러나 사람 인상이 갑자기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정말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운동을 좋아해서 늘 검게 그을려 있던 얼굴은 하얘졌고, 생동감 있고 자신감 넘치던 눈빛은 떨리는 듯, 수줍은 듯, 다소곳해져 있었다.

항상 질끈 동여매던 찰랑거리던 머리는 풀어져서 하얗고 조그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옆모습은, 크리스틴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와 앉아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생소하고 낯설어 그 느낌을 굳이 말하자면, 그냥 아팠던 게 아니라 무슨 커다란 열병을 앓고 난 사람 같았다. 마냥 명랑하기만 하던 여자 아이가 감수성어린 소녀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허심한 눈빛, 파리한 얼굴, 연붉은 입술, 자판을 두드리는 가늘고 긴 손가락은 더없이 섬세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이제 본토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주까지만 크리스틴, 너를 가르친다고 하니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 창백한 얼굴에 가련한 눈빛...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얼른 돌아섰다.

다실(茶室)로 갔다. 차향기가 은은한 다실엔 하안거(夏安居)차 방문 중인 통도사 스님 세 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황송하게 국화차를 공양 받고 다실을 나왔다. 햇살이 눈부셨다. 저만치, 크리스틴이 생각에 잠긴 듯 풍경소리 맑게 울리는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약간 마르고 큰 키에, 언제나 활력 넘치던 녀석의 뒷모습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

나무와 꽃과 새들이 노래하는 산사의 뜨락을 거닐어도 인간의 뒷모습이 예외 없이 슬픈 건, 동물로서 일체의 방어력이 상실된 무구한 형상 때문이 아닐까. 걸음을 멈추고 예쁘게 피어난 수련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목젖이 아려왔다.
크리스틴이 왜, 갑자기 생경할 정도로 낯설었을까. 그가 안겨준 미시감(자메뷰)을 알 길이 없다. 내 기억의 오류라고 인정해야만 합리적 대답이 될 것 같다. 아니면 그가 한 사람에서 한 인간으로 아니면, 한 여자 아이에서 한 소녀로 변모한 바로 그 변곡점을 목격한 것일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헷세를 빌려 말하면 크리스틴이란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고통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을 내가 목도한 것일까.

혹시 이 짐작이 맞는다면 크리스틴이 이제부터 경험해야할 삶의 신산이 안타깝다.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순결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최소한 발에 흙이 묻길 바라며, 최소한의 상처만 받고, 최소한만 아프고, 진자리보다는 마른자리에서 편안한 삶을 구가하길 기원한다.

하루하루 살면서 나를 깨우는 건 바람, 비, 구름, 별, 풀벌레 울음소리 등도 있지만, 떨리는 소녀의 눈빛, 그 가늘고 긴 손가락도 있다.

<김완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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