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웅의 작별

2018-09-04 (화)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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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작별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타계로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살맛 떨어지는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대통령은 뒤늦게, 그것도 마지못해 국가에 대한 그의 헌신을 인정했지만 매케인 사후에 봇물처럼 쏟아진 각계의 찬사와 헌사는 생전에 그가 보기 드믄 수준의 존경을 받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적지 않은 친구를 적으로 돌린 그의 성격과 특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칠간 우리는 단지 매케인이라는 한 유능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휩싸였다: 실제로 우리는 미국의 명예율(honor code)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몇 안 되는 “남은 자들”(remnants) 가운데 한 명을 떠나보냈다.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조국에 바친 충직한 애국자였던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근면, 자기희생, 용기, 선량한 의도와 강인한 정신 등 미국을 틀 지은 가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매케인은 평생 서로 다른 여러 경우를 통해 이러한 가치 모두를 아우르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와 비슷한 부류의 정치인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는 적잖은 두려움과 함께 지상의 속박에서 그를 풀어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다른 유명 인사들과 그를 구별 짓는 주된 특성은 그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매케인이 5년 이상 수감되었던 북부 베트남 포로수용소의 소장마저 인정한 강인함이다.

트란 트롱 두옛 예비역 대령은 자신이 억류했던 옛 포로의 사망소식을 접한 후 “매케인의 강인함과 의연한 태도에 개인적으로 그를 무척 좋아했다”고 회고하고 “후일 정치인으로서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매케인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대통령은 부음을 접한 이후 지난 며칠 동안 마치 복수심에 가득 찬 철부지처럼 행동했다. 아마도 트럼프는 연민보다 일관성을 중요시했거나, 전설적인 영웅 대 성직자들조차 혐오스러워하는 시시껄렁한 망나니라는 피할 수 없는 대조에 화가 치밀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3년 전 아이오와에서 열린 ‘패밀리 리더십 카운슬’ 모임에서 “그는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영웅이 됐다”며 매케인의 영웅적 행위에 의구심을 표시한 뒤 “나는 전쟁 포로보다 포로로 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고 비아냥댄 바 있다.


트럼프는 지난 1997년 하워드 스턴에게 성병을 피하는 게 “내 개인적 베트남전”이라며 베트남 참전 용사 전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나야말로 위대하고 대단히 용감한 병사라는 기분이 든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군 최고통수권자인 트럼프는 정중하게 예를 갖춰 고인을 추모하지 않았을 뿐더러 백악관에 게양한 조기를 이틀째 되는 날 내렸다가 그의 얄팍한 속내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자 마지못해 게양기간을 연장했다.

매케인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냈기에 영웅이 된 것이 아니다. 영웅이 되기 위해 격추당하거나 포로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영웅이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영웅은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적 의무를 이행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매케인은 분명 영웅이다. 그의 아버지가 미군 해군제독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억류자들이 선동전략 차원에서 제안한 조기석방을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매케인은 자신보다 먼저 포로가 된 미군들을 함께 석방하지 않는 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연이은 회유에도 끝내 거부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것이 위대한 자기희생의 행위라는 사실에 그 누구도 의문을 던질 수 없을 터이고, 트럼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실 트럼프에게는 군통수권자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군 최고지도자라는 사실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지휘관들이 상당수에 달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뎌내는 군 지도부의 자제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의심의 여지없이 매케인은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때때로 당론을 거스르는 반대표로 공화당 동료의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이와 관련된 눈에 띄는 예가 하나 있다.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지난여름 트럼프의 오바마케어 폐기 시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워싱턴으로 귀환한 그는 상원 회의실 단상에 올라가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아래쪽으로 내리는 단호하면서도 극적인 반대 제스처로 화제를 모았다.

가끔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이단아”라는 꼬리표를 아마도 조금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가 늘 현명한 판단을 내렸던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2008년 대선 당시 자신의 러닝메이트이자 부통령후보로 조 리버먼을 선호했지만 당 내부의 압력에 굴복해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였던 새라 페일린을 선택했다.

놀랍게도 그는 생애 막판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트럼프가 늪의 물을 빼낸 기득권층의 일부로 간주됐다.

공화당 지지층이 정중함과 품위를 경시하고, 세계화의 현실에 저항하는 극우파 고립주의자들의 방어벽이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는 당내 매파이자 친 이민을 표방하는 중도주의자였다.

이처럼 매케인과 트럼프는 미국의 공정성을 가운데 두고 서로의 반대편에 선 채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앙숙이었다.

전쟁영웅인 매케인이 그의 시민적 모델이 가장 요구되는 시기에 무대를 떠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뒤이어 쏟아진 추모사로 많은 미국인들은 진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명백히 이해하지 못하는지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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