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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성학대 은폐 의혹” 교황 사임요구 파문

2018-08-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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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위 후 추기경 성의혹 보고”, 비가노 가톨릭 대주교 폭로

▶ 언론 “보수파 권력투쟁”분석

“사제의 성학대 은폐 의혹” 교황 사임요구 파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26일 아일랜드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지낸 가톨릭 대주교가 교황도 사제에 의한 아동 성학대 의혹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 가담했다며 교황의 퇴위를 요구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77) 대주교는 26일 가톨릭 보수 매체들에 11쪽 분량의 편지를 보내 자신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시어도어 매캐릭 전 추기경의 잇단 성학대 의혹에 관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교황은 늦어도 2013년 6월23일부터 매캐릭이 연쇄 가해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2016년까지 5년 간 미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지낸 바 있다.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매캐릭 전 추기경은 10대 소년을 포함해 낮은 직급의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이 거세지자 지난달 말 추기경직에서 물러난 뒤 근신에 처해졌다.


비가노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교회의 투명성을 누구보다 강조해 왔다”며 “이 문제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해온 그는 매캐릭의 학대를 은폐한 추기경과 주교들에 대해 선례를 보여야 하며, 그들 모두와 함께 사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일랜드 방문 이틀째에 뜻하지 않은 일격을 당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비가노 대주교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확인을 거부해 당분간 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세계 언론은 교황의 사퇴까지 거론한 비가노 대주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함께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번 폭로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거세지고 있는 가톨릭 보혁 갈등의 산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일랜드를 방문해 교회에 의한 아동 성폭력을 거듭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등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시점에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또 BBC는 비가노 대주교가 교황과 각을 세우는 보수파들과 가깝다는 사실에도 주목하면서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고위층 내부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조직적인 공격에 처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도했다.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고,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의 혼배 성사를 집전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교황의 리더십에 대해 가톨릭 보수파들은 눈살을 찌푸려왔다는 것이다. 이혼한 사람에게도 성체 성사를 받는 길을 열어놓은 교황의 가르침에 가톨릭 보수파 추기경 4명은 몇 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바 있다.

NYT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래 특히 일부 미국 추기경과 주교들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 인사들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둘러싸고 교황에 반발해 왔다고 지적했다.

NYT는 비가노 대주교가 이번 편지의 대부분을 아동 성학대보다는 교황청 내부에 존재하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며 “동성애자 가톨릭 신자들까지 기꺼이 포용하려는 교황과 교황 측근들의 철학이 보수주의자들의 분노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사제들에게 미성년 시절 성적으로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 일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겨냥한 비가노 대주교의 이번 의혹 제기가 논점을 흐리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NYT에 “이번 일은 아동 성학대 위기와 피해자들을 권력 투쟁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쿠리아(교황청 관료 조직) 내부의 집안 싸움”이라며 “아동 성학대 위기의 본질은 주교가 진보주의자냐 보수주의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아동 보호와 관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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