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은 먹고 먹히는 아수라장

2018-08-20 (월)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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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먹고 먹히는 아수라장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늦여름 독서를 위해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빗 리빙스턴 스미스의 저서 “Less Than Human”(인간 미달)을 주문하기 무섭게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을 “개”와 “인간 말종”(lowlife)으로 몰아친 트럼프 대통령의 설화가 터져 나왔다.

트럼프가 내뱉은 두 마디 욕설은 “타인”을 비인간화(dehumanizing) 하는 것으로 상대를 짓밟기 시작하는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데이빗의 연구와 딱 맞아떨어진다.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다가 곧 싫증을 내고, 급기야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폄훼하고 경멸한다.


풀 네임 대신 퍼스트 네임으로 널리 알려진 오마로사는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 출연을 계기로 트럼프와 친분을 쌓았으며 그의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으나 지난해 해고됐다.

지난 며칠 동안, 그녀는 자신의 해고와 관련한 비밀 녹취록과 해임직후 트럼프와 나눈 대화내용이 담긴 육성 테이프를 공개했고, 보좌관으로 재임하면서 보고 들은 백악관 내부사정을 낱낱이 기록해 책으로 펴냈으며, MSNBC 크리스 매튜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에 협력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뮬러 특검이 오마로사가 제공하려는 정보에 관심을 가질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트럼프와 오마로사는 서로 격이 맞는 호적수다. 비밀 녹취, 그것도 백악관에서 행한 비밀 녹취 행위는 설사 불법이 아니라 해도 분명 적절치 않다.

지난 화요일, 트럼프 캠페인은 오마로사가 2016년 대통령 선거전 당시 서명한 비밀유지약정을 어겼다며 그녀를 상대로 중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마로사가 자신의 셀폰을 이용해 녹취를 했다면 고위관리들이 해커들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동기가 무엇이건, 오마로사는 트럼프가 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기로 작심한 듯 보인다. (맙소사 오마로사, 이제까지 당신만 모르고 있었네요. 트럼프는 인종주의자일 뿐 아니라 여성혐오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오마로사는 트럼프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할 당시 그가 흑인을 비하하는 N으로 시작되는 욕설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아마도 트럼프는 그런 금기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인종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자신과 인종적 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 특히 아프리칸-아메리칸에 관한 트럼프의 평소 말투는 그의 사고방식이 인종주의에 물들었음을 시사한다.)


대다수의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자신이 인종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N-워드를 사용한다든지 평소 유색인종에게 해를 가하려는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치명적이고도 수동적인 흑사병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집 뜰에 십자가를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 단지 아프리칸-아메리칸(흑은 아시안이나 라티노)을 정형화된 모욕적인 방식으로 보기만 하면 된다.

이와 같이, 오마로사에게 화가 치민 트럼프도 그녀를 그저 불평이 심한 전직 직원쯤으로 평하거나 다소 경멸적인 중립적 코멘트를 남기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개”와 “인간 말종” 운운하는 트윗을 날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치광이 울보인 인간 말종에게 기회를 주고, 백악관에 일자리를 마련해주어 봐야 소용이 없다. 켈리 장군이 그 개(dog)를 신속히 해고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상대 여성이 누구건 간에 이런 상스런 말을 던지는 것은 역겨운 짓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을 더욱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가 소수계 여성을 겨냥했고, 이전에도 아프리칸-아메리칸을 표적삼아 일련의 유사한 모욕을 가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 트럼프는 최근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에게 지능지수가 “60대 중반 언저리”로 저능이라는 믿기 힘든 험담을 했다.

지난 8월 3일, 그는 CNN 앵커 돈 레몬과 LA 레이커스 수퍼스타 르브론 제임스를 싸잡아 공격하는 트윗을 올렸다: “르브론 제임스는 방금 가장 멍청한 TV 방송인 돈 레몬과 인터뷰를 했다. 돈 레몬으로 말미암아 르브론은 제법 똑똑하게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들은 한결같이 트럼프에게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대통령은 수시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상한 논리를 구사해가며 트럼프를 파이터(fighter)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는 늘 반격을 가한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대기 중으로 내뿜은 증오를 정당화하는 것인 양 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종주의적 사고로 충전된 독설의 패턴을 내보임으로써 자신의 적들을 도와준다.

어떤 모욕은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에게 가해질 때 임팩트가 훨씬 커지거나 작아진다. 이전에 트럼프가 그랬듯 미트 롬니 혹은 스티브 배넌을 개에 견주는 것과 흑인 여성을 개라 부르는 것은 전혀 같지 않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지능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특히나 참람한 일이다.

트럼프의 의도는 우리가 그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코흘리개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나 발동할 법한 충동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비인간화 -- 혹은 요즘 말로 “타인화”(othering) -- 는 상대의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연결되고 (예컨대 어린 불법이민자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등의) 잔혹성으로, 그리곤 그보다 더 나쁜 다른 무엇인가로 이어질 수 있다.

스미스가 그의 책에서 설명하듯 상대방을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세계의 전쟁 잔혹사가 이를 입증해준다.

제아무리 정도가 낮다 해도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비인간적인 언어에 불편함을 느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래야만 한다.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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