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름방학이 너무 길다

2018-08-18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작게 크게
기나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생들은 곧 새 학년을 맞는다. 방학이 되면 학생들이 학기 중 쌓였던 긴장을 풀고, 늦잠도 자고 게으름을 피우면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이 주요 일과였던 때가 있었다. 태곳적 얘기이다.

언제부터인지 여름방학은 학교생활의 연장처럼 되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각종 예능, 스포츠, 컴퓨터, 자연탐방, 해외 문화여행, SAT 시험 준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가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추세가 되었다. 학교에서처럼 지식습득과 평가에 따르는 부담 없이 다양한 방면에서 훈련을 쌓고, 취미개발을 통해 능력 있고 자신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훈련과정으로서 여름방학 프로그램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교육적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유료라는 점이다. 지역과 프로그램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집에서 다니는 데이 캠프의 경우 대략 한 주일에 500 달러 전후의 참가비가 들고, 해외여행을 포함한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면 수천 달러 이상이 든다. 자녀 두세 명을 여름방학 프로그램에 참가시키려면, 소득 상위권 가정이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대다수 학부모들의 사정이다. 
  
8주 내지 9주 동안 방학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신체단련, 재능개발, 사회성 향상에서 큰 혜택을 받고 새 학년을 시작한다. 반면 이들 운 좋은 학생들과 같은 수준의 재능을 가진 적지 않은 아이들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집에서 할 일 없이 놀거나, TV 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거나, 무료를 못 이겨 나쁜 유혹에 빠지는 위험을 안고 방학을 보낸다.


재능개발의 기회를 놓친 많은 저소득층 학생들은 운 좋은 또래들과 차이가 더 벌어진 상태에서 새 학년을 시작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3년 동안 이같은 손해가 누적되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은 두 그룹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생길 수 있다. 경제적 취약가정 학생들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면 여름방학 기간을 줄여서 정규학교 수업 기간을 늘리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연중 수업일수는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비해 4주 내지 8주가 적다. 중국이 251일, 일본 243일, 인도 236일, 한국 225일인데 비해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연간 183일에 불과하다. 수업일수에 비례해서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년간 계속되는 통계를 보면 미국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아시아 국가들의 학생들 보다 처지고 있다. 세계 최상위 수학자 과학자들 중에 미국학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소수의 천재들의 공헌만큼 국민 전체의 수준도 국력 결정의 중요한 요소이다.

오랜 세월 “잠자던 사자들”이 속속 깨어나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과 같은 기존 세력에 만만치 않은 도전을 해오고 있다. 재능개발 기회의 불평등은 학생들 개인의 손실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최강국이 미래의 이등국가로 전락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현행 교육정책을 검토해서 여름방학 기간을 줄이고, 여기서 얻은 기간을 모든 학생들이 평등하게 혜택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활용해야 한다. 수업일수를 적어도 한국의 경우처럼 225일로 늘리는 것이 개선의 첫 단계일수 있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