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울의 여왕’ 잠들다

2018-08-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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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사 프랭클린 타계, 14살 때 첫 앨범 발표, 그래미상 18차례 수상

▶ 여성 첫‘로큰롤 명예전당’, 췌장암 투병 중에도, 최근까지 꾸준한 활동

‘소울의 여왕’ 잠들다

라레사 프랭클린이 지난 2005년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자유의 메달’을 받고 있는 모습. [AP]

전설적인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 어리사 프랭클린이 16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홍보담당자인 괜돌린 퀸은 이날 발표한 ‘가족 성명’을 통해 프랭클린이 이날 오전 9시 50분(미국 동부시간 기준)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건강 위독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만이다.

프랭클린의 가족은 주치의 판정을 인용, “사인은 췌장 신경내분비암”이라고 밝혔다.


1960년 본격 데뷔한 이래 약 60년 동안 미국 대중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싱어송라이터 프랭클린은 최근 수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꾸준한 활동을 펼치며 ‘살아있는 전설’로 불렸다.

그러나 작년 2월, 여름 콘서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은퇴 계획을 밝히면서 북투어와 엄선한 일부 공연 무대에만 서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2018 뉴올리언스 재즈 앤드 헤리티지 페스티벌’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행사 직전 의사의 권고를 이유로 들며 불참을 통보했다.

프랭클린은 평생 사생활을 비밀에 부쳤으나, 측근은 그가 음주·흡연·과체중 등에 기인한 건강문제로 오랜 시간 투병했으며 이로 인해 한때 120kg에 달했던 체중이 최근 39kg으로 급감하는 등 언제든 숨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은 2010년 프랭클린이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으며 프랭클린은 이를 부인한 바 있다.

작년 11월 8일 뉴욕에서 열린 ‘엘튼 존 에이즈 재단’ 기금 마련 콘서트가 프랭클린의 마지막 무대가 됐고, 옛날 노래들을 재녹음해 11월 10일 출시한 ‘새로운 나’(A Brand New Me)는 마지막 앨범으로 남았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셀 수 없이 많은 무대 경력에 작곡·피아노 실력까지 갖춘 프랭클린은 1987년 여성으로서는 처음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1994년에는 존 F.케네디 센터 주관 공연예술 평생 공로상 최연소 수상자가 됐으며, 2005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그래미상 18차례 수상, 빌보드 R&B 차트 1위곡 최다 보유(20곡) 기록 등을 갖고 있으며, 200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기념 콘서트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장례식에서 노래했고, 지미 카터(1977)·빌 클린턴(1993)·버락 오바마(2009)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대표곡으로는 ‘리스펙트’(Respect), ‘아이 세이 어 리틀 프레이어’(I Say a Little Prayer), ‘내추럴 우먼’(Natural Woman). ‘체인 오브 풀스’(Chain of Fools), ‘싱크’(Think) 등이 손꼽힌다.


프랭클린은 1942년 3월 25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6살 때 디트로이트로 이사한 뒤 부모는 곧 이혼했으며 이후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컸다. 마할리아 잭슨 등 유명한 기독교 복음성가 가수들이 자주 집에 드나들면서 음악적 영감을 얻기 시작했고 14살 때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초기에는 주로 가스펠을 부르다 솔, 일반 팝으로 영역을 넓혔다.

복음성가 순회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프랭클린은 18세 때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솔 가수로 유명하지만,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디바’로 우뚝 섰다.

그는 2번 결혼하고 2번 이혼했으며, 슬하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앨 샤프턴 목사, 제시 잭슨 목사, 스티비 원더와 머라이어 캐리 등 정계·교계·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미 전역의 팬들까지 각계각층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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