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부들이 두려워할 유형의 대통령…트럼프

2018-08-13 (월) 리처드 코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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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들이 두려워할 유형의 대통령…트럼프

리처드 코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미국 헌정사에 도널드 트럼프만큼 외설스런 대통령이 있었던가 - 그에 비견할 만큼 둔감하고, 무지하며, 저질이고, 부정직한데다 전례를 무시하고, 민권을 업신여기며, 자신의 행정부와 관리들에게 비판적이고, 야수 같으며, 무책임하고, 언론에 적대적일뿐더러 노골적인 인종주의자이자 자기중심적인 대통령이 있었던가?

대답은 “No”다. 굳이 비교대상을 찾으려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안 될 일이다. 우리에겐 대통령은 트럼프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 여기는 미국이고, 미국은 특별하며, 선동적인 정치가에게 환호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남북전쟁과 대공황,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적색공포와 러시아 혁명, 본격적인 냉전에 뒤이은 매카시 시대 등 힘겹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왔다.

인디언 원주민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고,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으며 그 이후에도 인종주의적 요소로 점철된 관습과 법을 그대로 유지했다.

일본계-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냈고, 만연한 반유대인 정서로 인해 나치의 학살을 피해 황급히 피난길에 오른 유대인들에게 잠시 등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 특히 다른 여러 나라들과 비교하면 - 우리는 분명 놀랄 만큼 멋진 국가였다.

헌데, 플로리다 주 탬파와 펜실베이니아 주 윌크스-배러 집회에 참석한 트럼프를 보았는가? 이들 집회에서 트럼프가 늘어놓은 거짓말과 막말, 언론에 대한 일상적 비방의 수위는 이전에 비해 한 눈금 올라갔다.

이번에는 더욱 감정적이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그는 기자들을 “지독히 끔직한 자들”로 싸잡아 비난했다. 기자들이 써낸 기사들에 대해서도 그는 “거짓투성이의 역겨운 가짜 뉴스”라며 가차 없이 매도했다.

심지어 그날 모임을 취재 중이던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는 탬파의 트럼프 지지 군중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그들은 아코스타의 뒤에서 “CNN은 가짜”라는 구호를 외쳤고, 트럼프는 장내 질서를 정돈하는 등 대통령답게 행동하기는커녕 그의 아들 에릭이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여러 장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자 자신도 이를 리트윗 하는 등 만족감을 표출했다.

이제까지 미국에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끔 지역 정당이나 제 3당에서 수준미달 후보가 대통령에 출마한 적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인종주의자인 스트롬 서먼드와 조지 C. 월러스였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번번이 이들의 시도를 좌절시켰고, 비뚤어진 이념의 확산을 틀어막았다.

미국 정치사를 통틀어 트럼프처럼 독을 내뿜고, 폭력을 선동하는 집회를 주도한 대통령 역시 단 한명도 없었다.

증오의 희열로 일그러진 트럼프 집회장의 얼굴들을 오래된 뉴스 필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1957년, 아홉 명의 흑인 아동이 리틀락의 센트럴 하이스쿨에 입학했을 때였다. 그로부터 9년 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인권운동의 무대를 시카고로 옮겼을 때도 일그러진 얼굴들이 뉴스 필름에 등장했다.

트럼프는 이렇듯 증오로 가득 찬 미국인의 옛 얼굴을 부활시켰다.

집권 여당도 그의 손발처럼 움직였다. 트럼프의 백악관 대변인 새라 허커비 샌더스는 “언론이 민중의 적”이라는 독재주의적 발상의 근원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답변을 거부했다.

공화당의원들의 상당수도 주눅 든 침묵을 지켰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반이민적이며 반과학적인 멍텅구리 정당으로 업데이트시켰다. 지금 공화당 내에서는 감히 누구도 그를 비판하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예비경선에서 패배를 앞둔 자들과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는 자들 모두가 트럼프의 지지를 확보하려 기를 쓴다.

한때 북부의 진보주의자들과 남부의 인종격리주의자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간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것이 현실이다.

폴 매너포트 기소에 대한 트럼프의 코멘트를 보라. 그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조작된 마녀사냥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트윗을 내보냈다. 그것은 “누가 내게서 이 귀찮은 신부를 제거해줄 것인가”라는 헨리 II세의 트럼프식 버전에 해당한다. 헨리 II세의 당시 발언은 토머스 베킷 캔터베리 대주교의 암살로 이어졌다.

트럼프가 매너포트를 사면한다고 해서 놀랄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폴 라이언은 얼굴을 찡그릴 것이고, 미치 맥코넬은 극히 온건한 비난성명을 내놓을 것이며, 나머지 공화당의원들은 마치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트럼프가 배를 긁어줄 수 있도록 등을 깔고 뒤로 누울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국제문제에서 그는 미국의 도덕적이며 실질적인 지도력을 포기했다. 마치 반항아처럼 앙겔라 메르켈, 테레사 메이, 저스틴 트뤼도, 엠마뉘엘 마크롱 등 외국 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의 원칙을 조롱하는 무례한 언사를 남발했다.

반면 러시아의 네오-로마노프 통치자이자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지칭하는 이른바 “리틀 러시안스”(Little Russians)의 지배자까지 겸하게 될지 모를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해서는 나쁜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조심해야 한다.

트럼프는 황무지를 난개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프로젝트를 재개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의 정치판을 오염시켰다.

트럼프가 물갈이를 하겠노라 약속했던 정계는 이전보다 늘어난 로비스트들로 악취를 풍기고, 그의 거짓말로 인해 쉰내가 진동한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노라 공약했으나 국가의 대외 영향력을 축소했고, 우리 모두가 전에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도널드 J. 트럼프는 국부들이 두려워할 새로운 유형의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은 또다시 미치광이 왕을 선출했다.

<리처드 코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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