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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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 우유’맛 좀 볼까… 더 진하고 고소하고 달콤

2018-08-08 (수) 12:00:00 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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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 닮은 영국 젖소 저지, 우유 맛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 많아 골든 밀크·로열 밀크로 불려

▶ 다양한 트렌드 맞춰 새로운 맛으로 취향 저격

염열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끓어 올랐다. 서울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이 저지 우유를 출시한다는 소식에 먹성 빠른 이들이 박수로 파도를 탔다. 일본 등 해외 여행에서 저지 우유를 경험해본 이들로부터 그 궁극의 고소한 맛에 대한 도시전설이 이미 형성돼있던 차였다.

지난 11일 ‘힙한’ 우유, 저지 우유가 국내에 출시됐다. 서울우유의 디저트 카페 밀크홀1937 종로점과 서초 롯데마트점, 분당 서현점에서 일단은 한정 판매한다. 우유와 함께 저지 아이스크림도 냈다.

습한 장마와 폭염에도 불구하고 저지 우유를 맛보기 위해 각 지점을 찾은 이들의 ‘간증’이 SNS에 이어졌다. 17일 찾은 종로점에서 저지 아이스크림과 우유의 인기를 한층 실감할 수 있었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유리병에 담긴 저지 우유는 점심시간이 좀 지났을 뿐인데도 채 몇 개 남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이들은 저지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드디어 한국에도 그냥 우유 말고, 저지 우유의 새 장이 열렸다.


저지 아이스크림은 풍부한 유지방이 맛의 경지를 보여줬다. 마치 버터나 크림을 차게 먹는 듯한 농후함이 매력적이다. 저지 우유는? 역시 크리미하고 싱그러운 지방 맛과 향이 일반 우유와 차별화를 이룬다. 더 고소하고 달고, 맛있다.

영국 왕실에 납품되는 저지 우유

그래서 이 저지 우유란 정체가 무엇인가. ‘저지(Jersey)’는 소의 품종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먹던 우유는 모두 홀스타인(Holstein) 소의 우유다. 검고 흰 얼룩을 가진, 모두가 아는 그 ‘젖소’가 바로 홀스타인이다. 네덜란드 프리슬란트가 원산이라 프리지언(Friesi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덩치가 암컷이 650㎏가량으로 무척 크고, 다른 품종 젖소에 비해 유량이 압도적으로 많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육되는 젖소 품종이다. 이외 젖소 품종은 홀스타인과 저지 외에도 건지(Guernsey), 에어셔(Ayshire), 브라운스위스(Brown Swiiss), 덴마크 적색우(Red Danish) 등이 있다.

반면 저지는 영국 출신이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인접한 영국 왕실령 섬인 저지 섬이 고향이다. 한우 같은 갈색 털을 가진 소이며, 홀스타인에 비해 덩치가 작고 생김새도 깜찍하다. 검은 코에 주둥이와 눈 주변에 흰 털이 나 있어 노루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다. 유량은 훨씬 적지만 유고형분 함량이 월등히 높은 우유가 나와 ‘골든 밀크(Golden Milk)’ 또는 ‘로열 밀크(Royal Milk)’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로열 밀크는 실제로 영국 왕실에 납품되는 우유라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낙농과 임동현 연구사 연구에 따르면 저지 종의 평균 우유 생산량은 미국에서 1일 두당 27㎏, 캐나다에서 22㎏으로 홀스타인 종과 비교했을 때 각각 73%, 65%가 낮다. 국내에서 첫 분만한 저지 소의 생산량 데이터에서도 저지 종의 생산량은 16㎏으로 같은 조건 홀스타인 소의 57%에 지나지 않았다. 홀스타인종의 생산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반면 우유의 맛을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에서는 저지종이 단연 뛰어나다. 홀스타인종 3.93%, 저지종 5.07%로 평균 유지율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평균 유단백율 역시 저지종이 3.82%로 홀스타인종의 3.22%에 비해 높다.

현재 저지 우유는 밀크홀1937 세 곳 지점에서만 판매하지만 서울우유는 저지 소의 두수를 늘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우유 생명공학연구소 김형종 부소장에 따르면 현재 52마리 저지 암소를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착유 가능한 암소는 11마리다. 전국적으로 저지 소는 80여 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도 37마리의 저지 소를 보유(이 중 암소는 23마리), 연구 중이며 향후 축산농가 보급도 추진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젖소의 우유


그런데 이 귀여운, 아니 맛있는 우유는 왜 이리 늦게 한국에 도착했는가. 2010년 젖소 품종 수입 제한 규정이 개정되었다. 그때부터 수정란 등의 형태로 저지 소 수입이 가능해졌고, 이후 수입된 저지 소가 연구를 거쳐 이제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1970년대에도 저지 및 기타 품종들이 존재했지만 홀스타인으로 우유 생산 품종이 굳어지며 시장이 도태됐었다. 김형종 부소장은 “생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농가들에서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1961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축산진흥정책 일환으로 1,000여 두의 홀스타인 소가 매해 수입됐다. 홀스타인 종이 워낙 우유를 잘 만들어내는 데다가, 고깃소로 이용하기에도 유리하다. 참고로 육우가 바로 20개월 가량 키운 수컷 홀스타인이다. 암컷 홀스타인 소고기는 젖소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또한 왜 지금 새삼 등장했는가. 김 부소장은 “소비자의 입맛이 다양화되어 저지 우유에 대한 수요도 존재할 것이라 판단해 도입한 것”이라고 답했다. 기후 변화도 한 몫을 했다고 짚었다. “홀스타인 소는 더위에 약해 여름철 생산량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에 반해 세계적으로 가장 작은 젖소 품종에 해당하는 저지 소는 여름철에도 더위를 잘 견디며 스트레스를 덜 받죠.” 홀스타인 소는 여름철 27℃ 기온이 지속되면 고온 스트레스로 현저한 생산성 저하를 겪는다.

저지 종은 에너지 절감형 젖소라는 평가도 받는다. 동일한 유고형분을 생산하는 데 저지 종은 홀스타인보다 32% 적은 용수를 사용하고, 11% 적은 면적을 요구하며 탄소배출량은 20% 적다. 환경 친화적인 유기농 축산 환경에 더 걸맞은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진하고 고소하고 친환경적인 저지 우유가 기존의 우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서울우유 중앙연구소 우유연구팀 강신호 팀장에 따르면 그렇지만은 않다. 강 팀장은 “다품종소량생산 등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장 트렌드에 따라 저지 우유에 대한 수요층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낙관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저지 우유는 산업적으로 기존의 홀스타인 우유 시장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저지 소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도 낙농 중 저지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에 불과하다. 강 팀장은 “저지 소는 온순하고 예뻐서 일본에서도 체험 관광 목장에서 관상용으로 키우는 일이 많다”며 “어디까지나 프리미엄 유제품 시장에 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지 수 개체수가 안정적으로 늘어난 이후 크림, 버터, 치즈 등 제품 개발도 고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지 우유는 홀스타인보다 치즈는 25%, 버터는 30% 높은 수율을 나타낸다고 한다. 같은 양의 우유로 더 많은 치즈와 버터를 얻을 수 있는 우유인 것이다.

홀스타인 우유가 나쁜 것이 아니다. 생산성도 좋고, 맛도 여태껏 마셔왔다시피 좋다. 서울우유나 매일우유, 남양우유 같은 대규모 업체에서 모든 젖소를 저지로 대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유와 연관된 음료, 아이스크림 시장과 제과, 제빵 시장에서도 기존의 제품을 저지 젖소의 우유와 유제품으로 대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유의 특성이 달라 레시피 변경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유와 유제품 시장에 새로운 취향의 선택지 하나가 추가된 것은 비록 몇 %에 불과한 시장일지라도 새로운 가치 소비 시장이 창출됨을 의미한다. 더 진하고 고소한 우유를 찾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다소 색다른 우유를 경험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저지 우유 출시는 희소식이다.

<이해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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