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샌디에고!”

2018-08-04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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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냐 꼴라다!”
해변 야외 테라스 바에 주말 관광객들과 섞여 한여름 햇살을 등에 지고 앉은 나는 핸섬한 바텐더에게 호기롭게 칵테일을 한잔 주문한다. 남북으로 10리는 족히 될 것 같은 태평양 해변의 드넓은 백사장을 유유히 거니는 비키니 피서객들을 선글라스를 통해 바라보는 내 몸에 달큰한 알코올 기운이 퍼져나간다.

이곳은 물경 130년 전인 1888년, 조선이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으로 한치 앞을 모르는 구한말의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지어졌다는 유서 깊은 코로나도 델 솔 호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1976년 미국독립 200 주년 때 왕실전용 요트를 타고 이곳에 와서 오찬파티를 가졌을 정도로 샌디에고를 대표하는 고풍스런 호텔이다. 여왕은 잃어버린 식민지 땅에서 오찬을 하며 저물어버린 대영제국의 영화를 아쉬워했을 것이다.

이민 오기 전인 20 여년 전, 서울 도심 빌딩 숲속의 조선호텔 지하 펍에서 아이리시 여가수가 부르던 통기타 생음악에 젖어 마시던 기네스 흑맥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정감 있는 낮술이다. 이런 칵테일을 내가 어찌 알았을까. 그건 내가 무슨 칵테일 애호가라서가 아니라 바로 옆자리 초로의 미국인 부부가 마시고 있는 게 맛있어 보이길래 물어 이름을 또박또박 받아 적었기 때문이다.


피냐 꼴라다(Pi?a colada). 갈아낸 우윳빛 코코넛 과즙 위에 라임 한 개를 꽉 짜 넣고, 흑백 2 종류의 독한 럼주를 부어 요란스럽게 흔들어 섞은 뒤, 껍질에 열십자로 칼집 낸 자두빛 포도 한 알을 빠뜨리고, 잔에는 얇게 썬 파인애플을 콕 걸어주는데 두어 모금에 6척의 나는 알싸~ 해졌다.

샌디에고는 두 번째 방문이다. 하지만 3년 전에는 LA에서 직장생활 하는 작은 아들과 함께 고작 일박하며 씨월드만 구경한 뒤 유명하다는 바비큐 집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온 게 전부라 제대로 도시의 속살을 찬찬히 볼 기회가 없었다.

모처럼 휴가와 일을 겸한 이번 9박 10일의 체류는 샌디에고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를 알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2년 반 전 한국을 다녀온 뒤로는 이렇다 할 휴가를 간 적이 없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하늘은 뜻밖의 멋진 샌디에고 여행을 선물해준 것이다.

6년 쓴 랩탑은 노쇠한 증상이 역력했다. 샌디에고까지 데려와 외장 키보드를 링거처럼 연결해야 겨우 사용이 가능했는데 이윽고 객지에서 그 수명이 다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로그-인 할 때 입력하는 비밀번호가 숫자 4로 끝없이 저절로 채워지는 치매증상을 보인 것이다.

과감하게 코스코에 들러 최신 사양의 랩탑을 새로 샀더니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자동차에 비유하면 마치 시속 100 마일로 가속되는 제로백 속도가 3초에 불과한 최상의 스포츠카 램보기니를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다. 낡고 두꺼운 도시바 랩탑이여, 6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다음 행선지는 샌디에고의 대표적 관광지로 특히 일몰의 장관이 뭇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른다는 라호야 코브. 아! 입에서는 작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진초록의 해조류 냄새도 정다운 이 아름다운 작은 만에선 불타는 석양을 배경으로 바다사자가 스쿠버 다이버,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유영을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변의 바위로 쑤욱 올라가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닌가.

라호야는 중가주의 몬터레이 못지않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면서도 바다사자와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는 천혜의 해양 사파리 테마파크 같은 느낌을 준다. 피어 39의 샌프란시스코 바다사자들이 인공 갑판 위에 올라가 ‘껑껑’ 우는 광경을 최고의 장관인양 알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불과 1 미터의 지근거리에서 바위틈으로 올라온 바다사자를 관찰할 수 있는 라호야 비치는 얼마나 멋진 곳인지 모른다.

샌디에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500 마일 남쪽의 멕시코와 접한 국경도시로 한반도로 말하면 신의주에서 출발해 부산을 지나 대마도에 이르는 거리이다. 비행기로는 1시간 20 분이 소요되었다. 태평양을 호령하는 세계 최강의 미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있는 샌디에고 해군기지 주변을 달리는 건강한 남녀 수병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치안도 아주 확실해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 샌디에고에 나는 푸욱 빠졌다. 곧 다시 올게. 사랑해, 샌디에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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