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안에 묻힌 진주

2018-07-19 (목) 정다운 카운슬러
작게 크게
내안에 묻힌 진주

정다운 카운슬러

이어령 박사가 쓴 ‘아들이여 이 산하를’이란 수필집에 나온 이야기다. 옛날 수염이 가슴까지 덮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노인은 길을 걷다가 어린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는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주무실 때 그 긴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꺼내놓고 주무십니까?”

노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긴 수염을 10년이나 길러 왔고 수천 번 이불을 덮고 잤었지만, 그 수염을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노인은 오늘 밤 자보고 내일 아침에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날 밤 노인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려 했지만 갑갑한 것이 옛날엔 꼭 바깥에 내놓고 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염을 내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언가 허전한 것이 옛날엔 이불 속에 넣고 잔 것 같았다.


밤새도록 그 노인은 이불 속에 수염을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한숨도 못 잤다. 다음 날 아침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도 끝내 노인은 수염을 어떻게 하고 잤는지를 말해 주지 못했다. 노인은 자기의 수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염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질문을 들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노인과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분을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곤 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이 아닌 ‘부모’ ’자녀’ 또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만 치중하며 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막연하기만 하다. 우선 ‘나’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의 시간 중 무엇을 위해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경제적인 부분을 어느 곳에 사용하고 있는지, 스트레스가 어디서 오는지, 여가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등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해보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 보는 것이다.

어떠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는가? 1년, 혹은 10년 전 꿈꿔왔던 모습이 지금 나의 모습과 일치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20대 초반 계획했던 나의 꿈, 결혼생활 중 배우자와 함께하고 싶었던 일들, 이루고 싶던 사회적 지위 등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

혹시나 내가 처했던 상황에 의해, 지위에 의해, 역할에 의해 어렸을 적 꿈꿔왔던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렸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인생은 60대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이라는 감옥에 갇혀 내 안에 묻힌 진주를 가두어 두지 않기를 소원해본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 끊임없는 질문들을 나에게 하는 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 보아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이고, 나를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은 자아를 찾아가는 청소년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중년의 시기, 더 나아가 은퇴한 노년기에도 계속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 흘러가고 있는 이 시간, 오직 ‘나’를 알아보고 ‘나’를 위해 사는 삶을 살며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한 나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본다.

<정다운 카운슬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