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2018-07-14 (토) 한연성 /한국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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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책을 인터넷으로 몇 권 구입하고 신이 나서 읽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서점 바닥에 다리를 쭈욱 펴고 앉아서 내가 원하는 책들을 읽던 때를 추억하며…

하는 일 없이 바쁜 요즘은 책마저도 마음대로 읽기 어려운 시간을 살고 있다. 고작 화장실에 덜렁 한 권 놓고 하루에 10여분 책을 보는 것이 전부이니…하긴 그래도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무시되는 여성의 인권과 권리, 암암리에 우리 사회에 젖어 있는 남성 우월주의 풍조에 주인공이 고통 받다가 병을 얻게 되는 줄거리다. 남성의 성희롱과 우월주의는 나에게도 흔한 기억 중 하나다.


중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보다 성장이 빨랐던 뒷번호 그룹 중에 우리가 봐도 예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녀와 나는 맡겨진 책임이 있어서 선생님들의 허드렛일을 돕곤 했다. 체육과 교무실은 운동장에 있어서 체육 시간이 되기 전에 우리는 필요한 교구를 설치하는 일을 하곤 했는데 늘 점심시간에 운동장 구석의 체육과 교무실에 가면 체육 선생님은 양동이를 주시면서 운동장에 널려진 수류탄(체력장이란 제도가 있을 시절에 멀리 던지기용으로 사용했던 기구 이름)을 주워 오라고 주문을 했다.

그런데 꼭 나보고 주우라 하시고 그 친구는 실내의 매트를 접게 시켰다. 20여분 후 수류탄을 낑낑거리면서 들고 돌아오면 잘했다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끌어안고 엉덩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친구의 귓볼을 만지는 선생님을 보면서 빨리 졸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성적표를 손으로 쓰던 시절,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 넘으니 성적을 내고 생활 기록부에 옮기는 작업을 종종 학생들에게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한씨 가문의 후예라 늘 생활 기록부 작성을 돕곤 했는데 그때마다 교무실에 가면 나이든 선생님이 내 팔의 안쪽을 잡고 “예쁘다”며 즐거워하곤 했다.

남자는 늘 반장이고 여자는 반장을 하면 큰일 나는 문화에서 성장하면서 왜 나는 남학생보다 못할까 하는 억울함도 있었다. 돌아보면 성장하면서 받은 성희롱, 남녀차별의 예화는 정말 차고 넘친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불이익을 받았다. 80년대에 태어나 성장한 김지영도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가면서 불이익과 편견에 시달리고 남성 우월주의에 피해를 입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돌아보면 역사는 한 번에 바뀌지 않았다. 수많은 민초들의 가열 찬 투쟁과 희생으로 사회는 조금씩 바뀌어왔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도 먼 훗날 우리 사회를 바꾸게 될 중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조금씩 바뀌다 보면 우리의 귀한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 월등히 나은 삶을 영위할 터전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연성 /한국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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