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실률 0%, 건물주 마음먹기에 달렸다

2018-07-13 (금) 구성훈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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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동안 단 한번도 건물이 꽉 찬 적이 없다고?”

LA 한인타운 6가의 한 샤핑센터. 가끔씩 건물 1층에 있는 한인마켓에 장을 보러 가거나,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약 일주일 전 볼일이 있어서 이곳을 찾았는데 몇몇 업소 공간이 비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비어있네, 테넌트 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주 한 두 명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 샤핑센터는 10여년 전 오픈한 이후 단 한번도 공실률 0%를 달성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곳과는 대조적으로 올림픽과 웨스턴 인근에 있는 한인 샤핑센터는 건물 전체가 꽉 차 있다. 공실률 0%이다. 비결이 뭘까 궁금했다.

이 샤핑센터 관리업체 관계자는 “테넌트가 입주할 때 몇 달간 렌트비를 받지 않거나 첫 해 렌트비를 싸게 해주는 등 입점업체들과 상생을 도모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웨스턴가에 위치한 한 한인 샤핑센터는 공실률이 5% 정도이다. 이곳은 입점 희망자가 나타나면 아이템 선정에 대한 컨설팅까지 제공하는 등 테넌트 유치에 나름 신경을 많이 쓴다. 잠시 한국으로 건너가 보자. 최근 핵심 테넌트가 빠져나간 후 건물의 절반이 비어버린 서울시내 한 빌딩. 절박함을 느낀 건물주는 5년 이상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테넌트에게 ‘6개월 렌트 프리’ 조건을 내걸고 입주자를 모집중이다.

여의도의 한 오피스 빌딩은 임대계약을 하는 입주자에게 인테리어 공사비를 적정 한도까지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다. 공실률이 치솟으면서 테넌트가 ‘갑’이 되어버린 셈이다.

며칠 전 주류언론들은 올해 2분기 말 현재 미국 전체 샤핑센터 공실률이 8.6%로 6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원인은 오프라인 판매에 주력해온 비즈니스들의 잇단 폐업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월스트릿 저널은 미국 내 샤핑센터 공실률 상승세가 올 하반기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아마존의 등장으로 보더스 서점 체인이 문을 닫았고,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블록버스터 비디오스토어 체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완구전문점 토이저러스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폐점했고, 한때 ‘혁신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리던 시어즈 백화점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크고 작은 오프라인 소매업체들이 줄줄이 쇠락의 길을 걷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득일까, 실일까. 집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온라인 샤핑을 하면 편하기는 하다.


차를 몰고 나갈 일이 없으니 개스비도 절약되고, 주차비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문을 닫는 상점들이 늘어날수록 건물 공실률은 증가하고, 주민들은 휴식공간을 잃게 된다. 한때 블록버스터 비디오스토어에 가서 “오늘 밤에는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며 새로 나온 비디오를 찾아다니는 것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토이저러스 매장에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트렌디한 장난감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별히 할일 없는 주말에 동네 보더스 서점에 가서 온갖 잡지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죽인 적도 많았다.

대형업체는 대형업체대로, 스몰 비즈니스는 스몰 비즈니스대로 온라인 샤핑에 치여 고전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테크널러지 발전의 그늘인 셈이다.

한인타운 곳곳을 다녀보면 건물 규모에 상관없이 비어있는 점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어있는 점포 바로 옆 공간에서 장사하는 업주나 건물 경비원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아 거기요? 장사 안 돼서 문 닫았죠”라고 대답한다.

한인타운 건물 공실률이 늘면 늘수록 타운 경제는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다.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건물의 가치는 테넌트가 결정한다”라고 말한다. 빈 공간에 입주할 테넌트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어온 테넌트의 비즈니스가 잘 되어야 그 건물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샤핑센터가 테넌트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면 샤핑센터와 비교가 되지않는 소규모 건물은 어떻겠는가. 건물주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다. 요즘처럼 테넌트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테넌트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비결은 건물주가 테넌트에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테넌트를 사업의 동반자로 여기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한 때다.

<구성훈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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