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이민 정책 편승 ‘묻지마 인종범죄’ 잇달아

2018-07-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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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방문 92세 멕시코인“돌아가라”폭행당해

▶ ‘외국 국기 티셔츠’ 여성에 “미국인이냐” 괴롭힘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인종 등 관련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본보 11일자 보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 이민 정책 바람을 타고 이유 없이 이민자들을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범죄 행위들이 속출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LA 인근 윌로브룩에서는 한 여성이 90대 노인을 상대로 “멕시코로 돌아가라”며 ‘묻지마’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일리노이주 공원에서는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최근 미국에서 중남미 출신 이민자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곳곳에서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USA 투데이와 CNN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로돌포 로드리게스(91)는 윌로브룩에 있는 집으로 걸어가던 중 지나치던 한 여성이 던진 콘크리트 벽돌에 맞아 다쳤다. 이 여성은 별안간 로드리게스를 향해 돌을 던졌고, 뒤이어 한무리의 남성들까지 로드리게스를 치고는 달아났다.


이 상황을 목격한 이웃 여성이 촬영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눈과 입술 부위에 피가 흥건한 로드리게스가 바닥에 주저앉아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이웃은 당시 가해 여성이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 혹은 ‘멕시코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벽돌을 던졌다며 “그건 인종차별”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미초아칸에 거주하는 로드리게스는 윌로브룩에 사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1년에 한 번꼴로 미국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손자 에릭 멘도사는 로드리게스가 올 가을이면 92세가 된다며 “어떻게 92세 노인을 이렇게 다치게 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멘도사는 할아버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고펀드미 닷컴’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목표액인 1만5,000달러를 훌쩍 초과해 11일 오후 현재 29만 달러를 넘어섰다.

일리노이주의 한 공원에서는 지난달 14일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여성이 별다른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CNN에 따르면 당시 생일파티를 하려고 쿡카운티 삼림보호구역을 찾은 미아 이리사리에게 한 남성이 “미국에서 그런 옷을 입으면 안 된다”며 다가와 “당신 미국 시민이냐”고 따지며 위협했다고 한다. 이리사리가 입고 있던 푸에르토리코 국기가 그려진 민소매 티셔츠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리사리는 공원 경찰에 “저 남성이 내가 입은 티셔츠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가해자는 경찰들이 도착한 후에도 이리사리를 향해 “넌 미국인이 아냐. 미국인이라면 그런 걸 입지 않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으로, 이곳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대통령 선거권은 없지만 후보 지명에는 참여한다.

이 사건은 피해자인 이리사리가 당시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쿡카운티 삼림보호구역 측은 경찰의 대응에 문제가 없는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삼림보호구역 측은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해당 경찰관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근직에 배정됐다”고 밝혔다. 또 당시 취한 상태였던 가해자는 체포돼 폭행, 풍기문란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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