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좌파의 조롱이 트럼프 재선 돕는다

2018-07-09 (월) 마크 시센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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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의 조롱이 트럼프 재선 돕는다

마크 시센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민주당은 의회와 백악관 재탈환을 위한 새로운 이론을 갖고 있다.

지난 1996년 “사커 맘”(soccer moms)이 빌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에 힘을 보탰고, 2004년 “나스카 대드”(NASCAR dads)가 조지 W. 부시의 당선에 기여한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는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지독히 경멸하는 #네버힐러리(NeverHillary) 유권자들 때문에 당선됐다는 분석이 민주당이 작성한 워싱턴 재장악 시나리오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 매체인 악시오스는 지난 대선 출구조사에서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그의 지지자들 20%”가 2018년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에서 “푸른 물결”의 동력원으로 작용하면서 의회와 백악관을 민주당에게 넘겨주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게 새로운 이론의 요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좌파의 과도한 트럼프 때리기가 지지자들과 그를 떼어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트럼프 대통령 캠프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주 사이, 좌파의 ‘트럼프 발작 신드롬’은 자체 핵분열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수위에 도달했다.

로버트 드 니로가 토니상 시상식장에서 토해낸 “F--- 트럼프” 장광설에 이어 사만사 비는 자신의 TV 쇼에서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구사해가며 이방카 트럼프를 “무책임한 XX”(feckless c---)로 매도했다.

워싱턴에 위치한 레드 헨 식당의 주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로 식사를 하러 온 백악관 대변인 사라 허커비 샌더스를 내쫓았고, 멕시칸 레스토랑을 찾은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장관은 “밀입국자 아동격리 반대” 구호를 외치는 성난 시위자들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여기에 보태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민-캘리포니아)은 좌파 운동가들을 향해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을 “확실하게 괴롭히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하면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뿌렸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미디어와 의회 내부에서는 물론 트위터 상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트럼프 반대자들이 남쪽 국경에서 벌어진 가족격리를 나치 독일의 만행에 비유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럼프가 냉랭한 시선으로 울부짖는 밀입국 여아를 내려다보는 합성사진을 표지에 게재하고 사진 속의 아이가 어머니와 격리된 듯이 암시했다.(그러나 당시 그 아이는 엄마와 격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은 또 트럼프가 연방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기도 전에 지명자의 상원 인준을 무조건 막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내놓았다.


도대체 진보파들은 트럼프를 마땅치 않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표를 던졌던 20%의 유권자들이 이렇듯 고삐 풀린 조롱에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은 지금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 비판론자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을 향한 무차별한 증오는 이들 유권자들로 하여금 반사적으로 트럼프를 두둔하도록 만든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증거도 있다. 트럼프를 뜨악해 하는 그의 지지자들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겨냥한 무분별한 공격이 어떻게 그들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낼지 설명했다.

인터뷰에 응한 지나 앤더스는 “대통령의 일부 발언과 행동이 대중의 분노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고 “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 대처방식에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왜 사람들이 분노하는지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앤더스는 “내 옷장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를 수놓은 옷은 단 한 벌도 없지만 그래도 대통령을 두둔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트럼프에 대한 지나친 공격을 들으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면서 그들로부터 대통령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역시 마지못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토니 슈란츠는 “대통령이 완벽한 인물도 아니고 어리석은 짓도 곧잘 하지만 좌파들이 사사건건 그를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기가 너무 역겹다”고 밝혔다.

바로 이들이 민주당이 그들의 진영으로 끌어오고 싶어 하는 유권자들의 실체다. 그러나 민주당은 원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들을 밀어내고 있고, 여론조사 역시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2주 전, 트럼프의 갤럽여론조사 지지율은 45%로 취임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주에는 41%로 다소 하락했다).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의 지지율은 87%로 9/11 테러참사 발생 직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기록한 지지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바로 이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트럼프에 대한 좌파의 공격이 2001년 9월 11일 테러공격 직후 공화당 유권자들을 결속시킨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음을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정중함, 품위,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정치적 실용주의에 호소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만약 힐러리만 출마하지 않는다면 계속 좌파 진영에 머무를 것이 분명한 #네버힐러리 유권자들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패했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라면 그건 명백한 자기기만이다.

그보다는 미국 양안의 진보적 엘리트들을 위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공장 폐쇄와 일자리 이전, 가정을 파괴하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확산 등으로 고전하는 수백만 명의 평범한 내륙지대 유권자들을 멀리한 것이 민주당의 결정적 패인이었다.

이들은 2016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더 이상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대중주의를 표방한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반 트럼프 분노발작만으로는 돌아선 이들을 다시 민주당 진영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민주당이 여전히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기존의 판단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좌파의 지저분한 조롱은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트럼프에게 헌납하는 최상의 선물이다. 사실 바로 그 같은 조롱이 트럼프를 재선시킬 수도 있다.

<마크 시센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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