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운전

2018-06-27 (수) 12:00:00 김주성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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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 남편이 나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준 것이 운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살았던 시라큐스에서였다. 다행히 성격이 느긋하고 칭찬을 잘 하는 남편 덕에 한 번의 싸움도 없이 면허증을 따게 되었다. 한산한 동네에서 운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복잡한 산호세로 이사 오니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교통 체증도 심하고, 사고도 많았다. 그러면서 거칠게 운전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득 어느 순간 예전에 내가 초보 운전자였을 때 나를 배려했던 사람들이 떠올랐고, 훗날 나도 나이를 먹어 헤매고 있을 모습이 보였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니 운전하는 것에 한결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운전으로 인한 다툼은 없었는데 무사고 운전 경력 15년차가 되면서 슬슬 남편의 운전에 훈수가 두고 싶어진다. 길치인 우리 남편이 길을 헤매거나 나가는 길을 놓치거나 할 때 예전에는 그래 좀 시간이 더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어갔는데 요즘은 좀 짜증이 난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내가 운전할 때 옆에서 남편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기에 입을 꾹 닫는다. 올 여름 방학 가족 여행은 자동차로 먼 길을 떠난다. 분명 우리 남편은 또 길을 헤맬 것이고 나가는 길을 놓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입이 근질거려도 “뭐 쫌 늦게 가면 되지 뭐”라고 나의 마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하리라.

<김주성 /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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