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을지 포커스 렌즈

2018-06-23 (토)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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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폭격목표는 너희들이 다 정해 놓고 우린 구경만 하라구?”

34년 전 UFL 즉 을지 포커스 렌즈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열흘도 채 안 남긴 어느 여름날, 오산 미군비행장의 핵 방어진지 벙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7 공군 소속으로 당시 최신예 전투기인 F-16을 운용하던 군산 비행장과 오산 51전술 비행단의 정보업무를 총괄하는 제0 전술 정보단 내 타격목표 정보팀장인 C대위는 순간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불과 1년 전 아웅산 사태가 터진 후라 당시의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태였다. 그 전 해 10월, 북한의 간첩들은 버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폭사시키려다 미리 도열해 있던 부총리와 외무장관 등 17명의 각료와 청와대 비서관들의 고귀한 인명을 앗아갔다. 을지훈련이 시작되면 비록 도상훈련이지만 온 나라가 준 전시상태에 돌입하곤 했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교수님이 교재로 ‘미시경제학’이나 ‘과학의 역사’와 같은 원서를 적어주시면, 나는 바로 구입해 영영사전을 찾아가며 미련하게 읽고는 책걸이를 하곤 했다. 아울러 원어민 발음을 배우겠다며 주한미군방송(AFKN)을 열심히 들어온 덕에 나름 영어엔 비교우위라고 자부하곤 했었다.

공군에 입대한 후에도 미군신문인 성조지에 소개된 시드니 셸던의 ‘게임의 여왕(Master of the Game)’ 과 같은 연작 베스트셀러 물을 구입해 읽었다. 월급날 오산기지 정문 앞 스니커즈 가게에서 달러를 환전한 후 콜로라도 출신인 절친 미군 정보장교에게 쥐어주고 부탁해 비행단 기지 매점에서 구입해 틈틈이 읽으며 영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토종영어로 미군 카운터 파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듣고 있던 C대위도 답답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전반적인 군의 장비나 전술운용 측면에서 미공군과 한국공군의 수준은 그야말로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간의 차이보다 더 컸고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명색이 연합훈련인데 처음부터 동등한 참여를 거쳐 A부터 Z까지 훈련계획을 수립해야 되고, 설령 시스템과 지식이 낙후된 우리 공군이 소화를 못해 못 따라가면 훈련스케줄이 지연되더라도 가르쳐가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당당하게 따지던 김 중위의 이유 있는 강짜(?)에 C대위는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고 또 이해시켜주려 애썼다.

미군은 낙후된 한국군을 교육시켜 수준을 올리는데 주둔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최고도의 효율로 지켜내는데 주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군의 현대화 문제는 “장군들이 그동안 그 많은 국방예산을 썼으면서 전작권 하나도 회수해올 실력을 키우지 못하고 도대체 뭐하고 있었냐?”며 전직 현직 대통령들이 번지수를 잘못 짚고 호통을 쳐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유럽의 강국인 독일이나 영국에도 미군기지가 있고 지금도 미군의 주도하에 NATO 합동군사훈련이 매년 시행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결코 주체의식과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닌 것처럼.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항에 입항한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에서 갓 내린 남녀 해군 장교들, 괌에서 오키나와에서 전개해온 B-52전략 폭격기의 조종사나 기총사수 또는 전투조종사들을 만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비록 도상훈련이지만 합동 군사작전을 함께 진행해 가는 것은 정말 긴장 속에서도 무척 흥분되는 일이었다. 국방력을 키우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 판단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매 12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면서 임무교대를 할 때에는 반드시 교대조에게 북한군의 특이 동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데, 미 육군 해군 공군 장교들은 번갈아 가면서 적의 육군과 해군 그리고 공군전력의 현재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였고 한국공군은 이를 순차 통역하였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은 7월에 실시할 예정이던 한미 합동 ‘UFG, 을지 프리덤 가이드’ 군사 훈련을 90년 이라크 전쟁으로 부득이 취소한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전격 취소하기로 하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먼저 제안한 것이라는데, 이쯤 되면 북미회담 성사를 위해 누가 자세를 낮춘 건지 아리송해진다. 어쨌든 이번만큼은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이행함으로써 전 세계에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고, 미국발 체제보장 속에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 중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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