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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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얀스크 철 생산으로 우랄지대 공업화 시작

2018-06-22 (금)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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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행⑩

네브얀스크 철 생산으로 우랄지대 공업화 시작

Nevyansk의 기우는 탑

기우는 탑 사용된 철은 99.9% 순도 지닌 손으로 만든 철
니즈니 노보고로드는 볼가 강 관광 중심지
볼가 강변엔 러시아 월드컵 축구경기장 건설
츠카로브는 560개 계단이 크레므린 궁으로 연결

우랄 최초의 철공장지대 Nevyansk
오후에 똑같은 운전수를 대동하고 에카테린스버그 시 북쪽 97킬로 (60마일) 떨어져 있는 우랄산맥 중부에 자리 잡은 Nevyansk란 소도시 향했다. 1700년에 철공소를 건축하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2010년 통계로 25,000여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랄산맥 하이왜이를 벗어나 좁은 길을 5분정도 가니 호수가 보이고 그 옆에 커다란 러시아정교회가 보이고 그 옆에 높이 57.5 미터의 기우는 내브얀스크 탑 (Leaning Tower of Nevyansk) 이 우뚝서있다. 1721년에서 1745년 사이에 건축된 탑으로 건축 목적도 그리고 건축가도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건축을 한 사람은 Akinfiy Demidov만 알려져 있다. 그가 우랄산맥에 철과 구리광산을 세우고 그가 죽을 때까지는 25개의 공장을 세웠으며 그가 죽을 때 즈음에는 당시에 러시아에서 가장 부자였다.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피터황재는 그에게 백작의 작위를 주기도 했다. 일인당 입장료가 350루불 (약 $6) 운전사까지 4명의 표를 구입 예쁘게 생긴 여자 안내원을 따라 탑으로 올라갔다. 이 탑에는 감옥, 연구실, 그리고 제일 위 7층에는 매 15분마다 울리는 종이 있다. 사람이 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가 있어 매 15분이 되면 종들이 우렁차게 울린다. 당시 이 높은 탑을 건설하는데 비용은 3천루불 그러나 그 시간을 측정하고 종을 치는 시설은 4천 루블이 소요되었다고 했다. 6층에 넓은 홀이 있으며 그 홀의 벽 모퉁이에서 말을 하면 아무리 적게 소리를 내어도 다른 벽에 있는 사람에게그 소리가 전달되어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이선교사와 각각 다른 벽에 서서 시험을 해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전화를 하는 것 같이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리가 공중으로 올라가 다른 곳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기우는 탑은 세계 여러 곳에 있으나 이 탑의 기우는 특징은 아래 부분이 한쪽으로 기울어져가고 탑 중간은 아래 부분과는 다른 반대방향으로 기울고 있어 윗부분은 기울지 않고 똑바로 서있다는 점이다. 이 건물에 사용된 철은 손으로 만들어 졌으며 99.9% 철로 285년이 되었어도 그곳에 사용된 철재료가 녹이 슬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의 철강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하여 모든 철강을 러시아에 공급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수출했다고 하며 철강으로 인하여 우랄의 공업화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시내로 나와 러시아 음식점으로 갔다. 치과의사인 이선교사의 아들이 식당에 예약을 하고 음식까지 이미 주문을 해 놓았다. 아들뿐만이 아니라 딸도 치과의사로 딸은 보스턴에서 수련 받고 있다. 이다윗선교사 부부의 선교에 아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신앙이 돈독한 청년이다. 이곳에는 연락되는 선교사가 없었지만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앙드레 한선교사가 이 선교사를 소개했다. 부산대 공대출신인 이선교사는 옐친 대통령의 출신인 우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성경선교회에서 만난 부인도 부산대 약학과 출신이다. 이곳에 온지 20년 이상이 되었으며 한인이 범죄에 연루되어 러시아경찰의 조사과정에서 통역을 함으로서 지금도 관리들과 친분을 갖게 되어 선교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옐친대통령 출신인 우랄공대에서 박사를 받은 것이 선교에 도움이 되겠다는 나의 의견에도 동의했다.


8월 17일

에카테린버그에서 니즈니 오보고로드 (Nizhny Novgorod) 로
우랄산맥을 횡단해야 유럽의 첫 목적지 오보고로드 시에 도착한다. 우랄산맥 길이는 1550마일로 길어도 비교적 낮은 산들이며 가장 높은 산 칼핀스크가 1878미터다. 우랄산맥에는 각종의 나무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남부 우랄에는 밀과 감자 등 여러 곡식이 재배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맥에 있는 도시에 살고 있으며 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랄에는 광물자원이 많으며 금 에메랄드 등 각종의 보석도 매장되어있다. 그리고 주위에 석유와 천연가도 매장되어있다. 이러한 광물질이 풍부하여 우랄산맥의 주요한 산업은 광산, 금속산업, 기계제작, 화학공업 등이다.

낮 12:09 에카테린스버그를 떠난 열차는 니즈니 오보고드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 아시아를 출발하여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우랄산맥으로 진입했지만 아직은 평지다. 30여분 지나니 열차는 산속으로 올라가면서 힘겨워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날이 화창하고 기온이 60-70도 안팎이라 청명한 날씨다.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난 4시 10분 우랄의 자연을 아름답게 비친다. 산속 넓은 계곡에 큰 마을이 지나가고 또 넓은 들판이 나타나고 또 강이 나타나 이 강을 따라 계속 질주하여 3시간 반이 지나서야 우랄산을 넘어온 것 같다. 아직도 멀리 야산이 보이지만 평지에 마을들이 자주 지나갔고 과수원이 보이는가 하면 감자 밭도 보인다. 5시간 10분간 쉬지 않고 처음 정차한 도시는 페름 (Perm)이다. 에카테리버그에서 다시 만난 메인주에서 온 부부가 이곳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면 이 도시 부근에서 Kungar 어름 토굴을 관광한다. 이 굴 안에는 크고 작은 연못이 수십개가 있다고 한다. 페름은 인구가 거의 백만이 되는 시베리아 대도시의 하나다.

페름에서 20분 정차 후 역마는 다시 서서히 움직이며 Kama강 철교를 넘는다. 늦은 오후의 철로가의 대부분의 작은 작약나무와 소나무들이 손을 흔드는 듯 하는 기분을 가진다. 어느 여행가의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기에서 시베리아의 작약나무에 지루함을 느낀다고 기록했다. 나는 그와 반대의 느낌을 가졌다. 작약나무뿐만이 아니라 멋지게 자란 소나무들이 선로 주위에 줄을 서 있다. 그 뿐인가! 들판의 아름다운 야생화, 수많은 강 끝없는 벌판, 푸른 산, 찬란한 햇빛, 비, 그리고 신비스러운 안개 이 모든 것들이 기쁨을 주고 있다. 밤 9시 이젠 해도 집으로 가는가 보다. 종일 이 넓은 시베리아를 밝히려고 애를 썼으니 피곤도 하리. 들판의 동물들도 복음자리로, 풀과 나무들도 이젠 쉴 때가 되었는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철마만 두두룩 두두둑 하고 힘겹게 애쓰고 있다.

일어나니 내 손목시계는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항상 현지시간을 말하는 전화기는 새벽 3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예카테린버그를 떠난 지 15시간 만에 시차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현지시간 4시30분이 지나니 아침이 밝아오고 열차는 숲을 지나 넓은 벌판으로 나온다. 벌판에는 또 황금들판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잠자던 모든 생물이 다시 광채를 발휘한다. 철로 가에 줄을 선 나무와 꽃들이 활기차고 웃는 듯하더니 5시가 되니 햇빛이 들과 야산 그리고 온천지를 빛나게 한다. 철로 가에 줄을 지어 사열하고 있는 소나무의 붉은 몸통들이 붉게 찬란히 빛난다.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신비하게 느꼈으나 1분도 되지 않아 계곡을 빠져 나오니 다시 빛나는 태양을 본다. 앞으로 2시간 10분이 지나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8월 18일
니즈니 노보고로드 (Nizhniy Novgorod)
17일 낮 12:09 에카테린스버그를 출발하여 니즈니 노보고드 역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인 18일 7:34이었다. 1397킬로 (831마일) 19시간의 주행이었다. 짧게는 니즈니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모스코바 동쪽까지 400킬로 떨어져 있으며 1221년에 세워진 도시다. 2010년 인구통계로 130만의 인구인 이 도시는 인구로는 러시의 다섯째 대 도시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 교통 과학 교육 문화의 중심지로 볼 때 러시아의 제 3의 도시다. 대학 극장 박물관 교회가 이곳에 모여 있다. 길이 930킬로의 오카강이 니즈니 동쪽에 흐르는 유럽최대의 볼가 강으로 흘러 들어와 강관광의 중심지다. 모스코바와 세인트 피터스버그와 연결되는 크루즈가 이곳에서 운항되며 볼가 강의 여객 및 화물 수송의 중요한 지점이다. 2018년 월드컵을 위하여 4만5천명을 수용하는 축구경기장이 볼가강변에 세워지고 있다.


니즈니 Moskovsky역에서 내려 택시로 향했다. 내가 내민 호텔주소를 보고 400루불(약 $7)이라고 말한다. 택시는 오카강(Oka)과 볼가강(Volga)이 만나는 다리를 건너 올가강 강변을 따라 10분정도 향하니 강변언덕위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시내 번화가에서 약간 벗어난 이 호텔은 Alexandrovsky Garden Hotel이란 긴 이름을 가진 호텔로 크지 않은 호텔이다. 호텔 데스크에 있는 젊은 두 여자직원들은 다른 지역호텔 직원들과 달리 영어에 능숙하다. 아침 일찍 호텔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추가요금을 요청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아무 말 없이 첵크인 해주었다. 3층에 있는 방에 들어가니 방도 넓고 무엇보다도 방에서 밖으로 확 튀어져 유유히 흐르는 볼가강의 전경이 눈 바로 앞에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가격이 아주 저렴하여 아침과 세금 포함하여 $60.60이다. 볼가강을 보기 위해 이곳에서 하루 머물기로 예정하고 저렴한 호텔을 선택한 것이 관광하기에도 편하고 강을 구경하기도 좋아 어는 고급 호텔보다도 나에게는 좋은 호텔이 되었다. 이곳에 오기까지 이미 6개 도시에서 여러 호텔에 숙박했지만 $100미만은 없었다. 아마도 이 호텔이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지는 모르나 이곳의 가장 중요한 중심부에 있는 크레므린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복잡한 도시의 건물을 피하고 앞으로 볼가강 뒤로 푸른 녹지대가 있어 편안히 쉴 수 있는 훌륭한 호텔이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는 볼가강 산책로를 거닐면서 두 개의 강을 따라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는 유람선이 정박한 곳으로 가 시간표를 확인했다. 유람선이 정박한 강가에서 정면에 시내 중심부로 올라가는 Chkalov Staircase가 보였다. Chkalov는 1937년 모스코바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최초로 비행한 러시아인 이름을 붙인 계단이다. 이도시의 제일의 관광지 Nishny Novgorod Kremlin 궁으로 연결되는 560개의 계단으로 된 아름다운 기념비적인 곳이다. 일직선으로 560 계단이지만 이것은 중간 중간에 세 길로 갈라져 모두 1500개의 계단이 된다. 그냥 스치고 지나 갈수가 없는 나의 성격 탓으로 이곳을 올라 크레므린 궁까지 걸어 다니다가 호텔로 왔다. 호텔에 부탁한 관광안내원이 11시에 만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므린 궁은 모스코바에만 있는 것으로 착각해오던 나로서는 소련에 크레므린이 여러 곳에 있으며 이 곳 크레므린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Kremlin은 모스코바에 있는 옛 궁전 또는 소련정부를 지칭할 때 쓰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크레므린의 본뜻은 성곽 또는 보루란 뜻이다. 이곳 크레므린도 지역정부가 들어서 있으며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성곽이다. 이태리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되어 1500-1511에 건축된 이 성곽이 외국의 침입자들에게 한 번도 점령되지 않았던 곳이다.

예정한 11시에 호텔에 관광안내원이 도착했다. 6척의 키에 균형 잡힌 몸매의 30대초 백인 러시아인이다. 피터라고 나에게 소개한 이 청년은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독일에서도 공부한 경력이 있으며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어학원을 경영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관광안내도 한다고 했다. 차분한 성격에 열성을 보여 호감이 가는 청년으로 더욱이 영어가 유창하여 미국청년을 만난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그의 차를 타고 시내 중심부 번화가로 향하여 첫째로 그가 안내한 곳이 크레므린 부근의 언덕이었다. 아름다운 Oka 강과 유럽에서 가장 긴 올가강이 만나는 지점이라 전경이 좋다. 사진 찰영을 위해 결혼식 직전 이곳을 오는 젊은이들이 있다. 크레므린 언덕에서 아래로 내다보면 오카강 건너편에 Sormovsky District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크레므린이 있는 지역은 정부 관리들을 포함한 비교적 화이트칼라 사람들이며 강 건너 편에는 블루칼라 직업인들이 많이 있다고 피터는 설명했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러시아정교건물이 여기저기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도시에는 40개의 러시아정교가 있다. 2018년 월드컵주최국으로 증축되고 있는 운동경기장 모습도 보였다. 16세기부터 매년 상품박람회가 열리는 아름다운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멀리 뒤쪽에 내가 내렸던 기차역도 보인다. 이 전시장은 사업과 문화의 광장일 뿐만이 아니라 이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부근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아침에 혼자서 보았던 크레므린에 다시 들어갔다. 13개의 탑과 12미터 높이의 담벼락으로 된 이 성곽 안에는 정부의 기관들과 박물관 러시아정교회대성당 그리고 2차 대전 전사자들을 기념한 기념비와 영구적인 횃불이 켜져 있다. 오후 2시가 가까워 멕도널에 가서 햄버거를 먹겠다고 하니 더 좋은 곳이 있다고 하면서 안내한 곳이 로컬 햄버거 집이다. 햄버거에 후련치 프라이 뿐이었지만 고픈 배를 채우기에 충분한 큰 헴버거는 멕도날 햄버거에 비하면 훨씬 크고 맛도 좋았다. 다음에 도보로 간 곳은 Bolshaya Pokrovskaya Street 로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다.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넓고 길이가 1킬로 정도는 될 듯한 긴 거리다. 곳곳에 각종의 구경거리가 있으며 아름다운 건물과 이 도시의 가장 훌륭한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있다. 좋은 카페와 식당들이 많아 밤에는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다. 이 거리 입구에는 1913년에 건립된 중앙정부은행 the State Bank 건물은 유명한 건축물이다. 현제 연방정부중앙은행 지점인 이곳은 1년에 하루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이 건물 낙성식에는 니콜라이 2세 황제가 참여했다. 그리고 이 거리의 끝에는 러시아의 영웅으로 추대 받는 유명한 작가인 Maxim Gorky 광장이 있으며 그곳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32-1990년에는 이곳에 태어난 그의 이름을 따 도시이름이 Gorky 시였던 때가 있었다.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서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한 곳은 현재 고르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고르키의 집과 앙드레 사카로브의 박물관이다. 소련 핵물리학자인 사카로브는 소비에트연방의 인권주의자로서 소비에트의 인권개선과 개혁을 주장하여 정부의 심한 박해를 받았다. 외국인들과 접촉을 막기 위해 모스코바에서 외국인 방문이 금지된 이 도시의 단층아파트로 유배되어 6년간 가택 연금되어 유배생활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하여 197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흥미 있는 일은 이 아파트에는 전화가 없어 외부와의 통화가 불가능했다. 한 KGB 비밀경찰원이 전화가설을 하기 위해 1986년에 이 집으로 왔다. 그 전화가 가설되자마자 첫 번째 사카로브에게 울린 전화가 있었다. 그 전화는 사카로브의 연금을 해제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련공산당최고위직위를 가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건 전화였다. 이 전화는 사카로브박물관의 가장 귀중한 기념물의 하나다. 고르바초프는 동서냉전의 종식의 공로로 1990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소비에트의 와해로 러시아에서는 인기가 없으나 서방국가에서는 가장 훌륭한 정치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도시에 대한 매력이 점점 커졌지만 다음 날에 모스코바로 향하기 때문에 관광안내원 피터의 더 보여주고 싶은 열의에도 사양하고 볼가강 배로 안내하도록 했다. 그가 승선권을 나에게 건네주고 배 앞까지 안내한 후 그와 작별했다. 이 배는 오카강과 볼가강을 도는 2시간짜리 유람선이다. 볼가강에 정박한 배는 먼저 오카강으로 향했다. 넓고 맑은 오카강 변 언덕에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유람선은 러시아 언어로 설명을 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오카강에서 다시 볼가강으로 향했다. 오카강변처럼 아름다운 건물들은 보이지 않아도 크래므린 등 높은 언덕위에 띄엄띄엄 새워진 아름다운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 앞을 지나 계속 항행하니 볼가강을 횡단하는 케이블카 가 보인다. 여러 개의 케이블카가 동시에 운행되고 있다. 니즈니 와 보르(Bor)타운을 연결하는 3660미터의 거리다. 900미터 넓이의 볼가강을 횡단하는 이 케이블카는 관광객들의 이용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보르타운에서 니즈니로 오고가는 통근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배가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 왔을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계속>

<권태진/변호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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