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란-스페인전 승자는 ‘이란 여성들’

2018-06-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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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녀의 상징 아지디에 37년 만에 입장 단체 응원

이란-스페인전 승자는 ‘이란 여성들’

한 여성이 스페인과 경기에서 이란 깃발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다. [AP]

여성에게 문을 굳게 걸어 잠갔던 이란 축구장이 드디어 여성에게도 문을 열었다.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테디엄에선 20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이란과 스페인의 경기의 단체 관람·응원 행사가 열렸는데 이란 정부는 이 행사에 여성들의 입장도 허용했다.

이란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사회가 급격히 종교화되면서 1981년 10월5일 아자디 스테디엄에서 열린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마지막으로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금지했다. 따라서 이날은 비록 실제 경기가 아니라 응원전이었지만 37년 만에 처음으로 이란 여성이 아자디 구장에 입장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자유’라는 뜻의 아자디 스테디엄은 이름과 달리 ‘금녀의 영역’이 되면서 이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란의 인권단체, 여성계에서는 줄곧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해오고 있다. 종종 여성 축구팬이 남장하고 이 경기장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경찰은 이들의 신원을 추적해 체포한다.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금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남성 관람객에게 욕설이나 성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게 보편적이다. 이란과 함께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금지해온 사우디아라비아는 올해 1월 이를 전격적으로 허용했다.

현지시간으로 밤 늦은 시간대인 오후 10시30분에 시작된 경기였지만 이란의 여성 축구팬들은 남성들과 섞여 경기가 생중계되는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마음껏 소리치며 이란 팀을 응원했다. 비록 히잡을 둘렀으나 남성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월드컵의 밤을 만끽했다. 애초 여성은 가족을 동반해야 한다고 공지됐으나 현장에서는 여성만 입장해도 제지하지 않았다. 또 남녀 구역이 분리되지도 않았다.

SNS엔 이란 여성들이 아자디 스테디엄 관중석에서 ‘역사적 순간’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셀 수 없이 게시됐다. 이날 경기의 진정한 승자는 한계를 넘어선 이란 여성이라는 글도 눈에 많이 띄었다. 사진을 올린 여성 타예베 시아바시 씨는 “언젠가 이란의 남녀가 함께 축구경기장에서 함께 즐겁게 관람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아자디 스테디엄에 들어와 너무 기쁘다”라고 소감을 적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이란의 16강 진출이 걸린 25일 포르투갈전에도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허용될 전망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실제 경기가 열리면 여성의 축구장 입장은 다시 불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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