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대를 내려올 즈음

2018-06-16 (토)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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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아 걷자며 나선 산책길이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부부가 꽤 빠른 속도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 지나가고 송아지만한 누런 개가 그들 뒤를 바짝 쫓는다. 뒤에서 자전거 소리가 나길래 무심결에 길섶으로 한 발짝 들어섰더니, “Thanks!” 가벼운 목소리를 떨구고 간다. 그 짧은 한마디가 밝은 기운을 몰고 온다. 나는 늙수그레한 남자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산책하는 행인 #1, 이름도 필요 없는 사람이 ‘나’다. 조깅하던 중년 부부는 행인 #2, #3이고 자전거 탄 은발의 남자는 행인 #4라 할까. 모두 호숫가 공원이라는 무대에서 행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지만, 그런 행인 역할도 있어야 배경에 활력이 붙는다. 주역을 맡았더라면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나지는 못할 터. 책임도 클 테고 하다못해 대사 한마디라도 더 외워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 때나 행인 역할이 주어져도 가벼운 마음으로 맡을 수 있을까. 젊었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중심 역할을 맡아야 뭔가 하는 것 같고 끝난 후의 성취감도 컸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어도 그때로서는 지우고만 싶던 기억의 주머니를 연다.

대학에서 영어 연극을 할 때였다. 배역을 정하는데 주역은 벌써 누군가에게 주어지고 대사라고는 몇 마디 없는 단역만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레 실망한 나는 관심 없는 척하며 어설픈 핑계를 대고 아예 연극의 모든 면에서 물러났다. 그러고서 며칠을 앓았다. 연기에 대한 애착이나 열정을 발휘할 기회를 잃어서가 아니라 역할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연극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던 날, 나는 무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멀찌 감치서 지켜보았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내 친구는 누구보다 잘 해냈고 나는 나의 옹졸함이 드러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탐냈던 것 같아 한동안 그녀를 피하던 기억조차 이제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았다. 지금은 소식도 모르는 그녀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 특유의 자지러지는 웃음에 다시 불을 댕길 수 있는 날이 오려는지.

그 시절의 열정이 그리우면서도 그저 한때의 아름다운 그림인 것으로 만족한다. 지나온 시간 중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는 ‘다카포(da capo)’가 의미도 없겠지만 음악에서처럼 ‘처음으로 돌아가 전체를 되풀이’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일부를 수정할 수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도 꽤 많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다시 살아야 한다면 지나간 대로 두어야겠지. 오래 입은 고무줄 바지처럼, 황금빛 노년도 가까이 와보니 적당히 낡고 적당히 헐렁해져서 편안하다. 노후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익명의 삶도 괜찮을 것 같고 어쩌면 익명이 더 편안할지도 모르겠다.

열심을 내는 일이 젊었을 때는 열정으로 불리지만 늙어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아무 데나 기웃거리고 발을 들여놓기보다는, 해야 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하는 것도 지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포기하는 과정을 성숙한 자세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바람직한 노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들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오는 날이다. 내 부엌살림이 아직 며느리 손에 설 것 같아 식탁에 옮겨다 놓기만 하면 되게끔 음식을 미리 다 준비해 두었다. 상 차리는 일은 아들 며느리에게 맡기고 나는 손자 곁으로 돌아간다.

아기를 안아본 지 30년도 더 된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아기를 다루는 며느리 곁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관객이 된다. 월령(月齡)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 먹인다는 이유식에 대해 묻자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와요”라는 며늘 아이의 명쾌한 답이 돌아온다. 인터넷만 검색하면 요리법도 육아법도, 없는 정보가 없다는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어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이가 조금만 어때도, 서툰 솜씨로 음식을 만들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양쪽 어머니에게 묻고 답하던 우리 세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모녀간에 또는 고부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신식 며느리와 소통하는 길을 인터넷에 양보한 시어머니는, 공연 뒷바라지를 해준 후 객석으로 돌아와 관객이 된다. 아직은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은, 역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관객으로.

“시는 평온한 가운데 회상이 일으키는 정서에서 나온다.”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이 되었을 때의 ‘그런’ 상태가 시를 끌어내기에 가장 좋은 상태라고 했던 시인 워즈워스의 말을 기억한다. 이제 나도 ‘그런’ 상태에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관객으로서의’ 삶을, 글을 쓰기에 좋은 때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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