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세티 시장께·웨슨 시의장께

2018-06-15 (금) 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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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 노숙자 셸터 건립과 방글라데시 주민의회 분리안를 놓고 한인타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항의시위와 투표 독려 운동을 주시하고 계실 것입니다. 30년 가까이 ‘한인사회 지킴이’를 자부해온 기자도 갑작스레 튀어 나온 이슈여서 몹시 당황했습니다.

저는 두분을 탓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합니다.

노숙자 셸터 설립과 주민의회 분리안은 잠자고 있던 한인사회에 폭동의 쓰라린 경험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폭동을 겪으면서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한인들은 정치인과 경찰에 더이상 ‘왕따’ 당하지 않겠다며 안간힘을 써 왔습니다. 투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했고 불가능한 것 같았던 LA시의원까지 배출해 냈습니다. 또 주류 정치인들과의 돈독한 교분관계를 잘 다져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인타운에 불어온 재개발 붐을 타고 자고나면 근사한 아파트와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며 타운의 얼굴이 말끔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타운의 변신은 지역구 시위원인 웨슨 시의장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장님과 시의장님이 한인사회에 갑자기 던진 노숙자 셸터와 주민의회 숙제는 우리가 제대로 된 정치력 신장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자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한인타운 지킴이 시민연대’를 비롯한 풀뿌리 한인들의 항의시위입니다. “폭동의 교훈이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위안거리로 남습니다.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전 LA시장은 시장에 당선된 직후 한인인사가 주선한 지지 모임에서 이런 말로 한인사회에 물벼락을 내렸지요. 한인사회가 주류 정치인들의 ATM 역할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한인들이 정치자금만 대주는 돈주머니가 되고 있음을 비아냥 거린 발언이었지요.

미국 정치는 돈과 투표 아니겠습니까. 투표가 중요하겠지만 돈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요.
대통령마다 할리웃을 찾는 이유도 돈 때문일 것 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후 이곳을 찾았고 또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재임시절 수차례 방문했습니다. 돈의 위력이지요.

유대인이 중심이 된 영화 산업의 메카 할리웃이 그냥 돈만 주고 말까요. 철저히 주고받습니다. 유대인에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 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인가. 심지어는 사면까지 요구합니다.

우리도 많은 정치인을 후원합니다. 정치헌금 내고 사진도 찍고 또 콘도, 주상복합 개발권도 따냅니다. 투표권이 없으면 ‘돈으로라도 정치인들을 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한인사회는 돈을 주고 뭘 받았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일부 인사들은 개발권과 술판매 허가권을 받았겠지만 정작 한인사회는 무엇을 받고 있을까요. 설마 한인타운 노숙자 셸터를 선물로 준 것은 아니겠지요.

한인사회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기자 역시 ‘님비’(NYMBY)라는 생각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 최소한 우리가 믿고 후원하는 시장님과 시의장님이 의견 수렴의 흉내 정도는 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의장님의 지역구인 10지구내 한인 투표권자는 그다지 큰 비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대의 투표권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분리안에 타운뿐 아니라 LA시 거주 수천여명도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 선거관리국에서 주민의회 선거에 이렇게 많은 참여가 쇄도한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고 있다지요. 수십만 LA한인의 표심이 한곳에 모아진다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장님과 시의장님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한인사회가 투표의 중요성과 정치헌금의 효율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된 듯 싶습니다. 투표로 ‘뭉치면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주셨어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겁니다.

<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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