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 말, 말

2018-06-11 (월) 강희선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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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느 분은 성격이 밝고 시원시원하며 씩씩하다. 남의 눈은 별로 의식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분이지만 어떤 오해가 생겼을 때 그것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대화를 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내고 없는 사실까지 덧붙이고 하는 것을 듣고, 잠시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렇게 대범해 보이는 사람도 남의 말에 휘둘리기도 한다는 생각에 정말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어느 사회나 단체든지 유독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모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려고 하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궁금해 한다. 문제는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보태어 비방과 험담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무심코 하는 말에 그 대상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지 그들은 알까? 단순히 재미로 동조했던 인터넷 상의 댓글들이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던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말이나 글의 위력이 칼보다 무섭다는 것이 이런 경우도 포함할 것이다.

가톨릭 기도 중 성소를 위한 기도가 있다. 그 내용 중에 “주님, 슬기로운 여성들을 많이 부르시어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복음의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또한, 주님의 몸인 교회에 봉사하며 도움과 사랑을 애타게 바라는 이웃들에게 헌신하게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미사 전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나는 과연 슬기로운 여성인지, 욕심과 탐욕, 질투 등의 어리석음으로 이웃에게 험담이나 비방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웃을 보살피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좀 더 나은 가정과 사회가 되려면 그 집단에 속해있는 우리 자신이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험담보다는 이해와 포용의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강희선 /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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