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당 형세 여전히 불리

2018-06-11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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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형세 여전히 불리
이번 주 캘리포니아 예비선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민주당의 11월 중간선거 전망이 더욱 밝아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좌파와 우파의 첨예한 대결구도 아래에서 민주당은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한다.

지난 10년간, 중도좌파는 서부지역에서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민주당이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패배의 물결을 되돌릴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올해 11월에 또 한 번 놀랄지도 모른다.


민주당의 통제 아래 있는 연방 의회 의석과, 주 의회와 주지사 관저의 수는 지난 100년래 최저점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영국의 데이빗 밀리밴드는 지난 2011년 노동당이 그 이전 해에 치러진 총선에서 거의 100년 만에 두 번째로 큰 참패를 겪었다고 밝혔다. 같은 해 스웨덴에서도 사회민주당이 1911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맛보았다.

한때 독일 정계를 쥐고 흔들었던 사민당 역시 1949년 연방공화국 건국 이래 가장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고, 프랑스의 좌파정당들은 1969년 이후 실시된 모든 선거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1년 이후 상황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좌파진영의 사정은 대체로 악화됐다.

그 배경을 뜯어보아도 현재 좌파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로 꼽히는 세계 금융위기는 주로 민간부문의 무분별한 이윤추구에 의해 촉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된 선거에서 좌파는 벌을 받았고 우파는 상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해 한 무리의 학자들은 “좌파의 패배 이유: 비교원근법을 통해 본 중도좌파의 몰락”(Why the Left Loses: The Decline of the Centre-Left in Comparative Perspective)이라는 제목의 책을 공저로 내놓았다.

책 서문에서 버나드 칼리지 대학 교수인 셰리 버먼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지도자다.

정치에서 지도자의 성격은 상당히 중요하다. 추종자들을 고무하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최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내게 주요 서방국가의 유일한 중도좌파 지도자는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뤼도가 강력한 카리스마와 “햇볕정책”(sunny ways)이라는 밝은 메시지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증도좌파로 간주되는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뤼도 총리와 비슷한 수완을 과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두 번의 정권교체 주기 동안 영국 노동당을 이끈 주역은 주류층 유권자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하는 남성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나 리더십이 주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보기엔 좌파 패배 현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세계 주요국의 좌파 정당들을 무능한 정치인들이 동시에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버먼이 제시한 두 번째 요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등장한 경제시스템의 성격이다. 당시의 경제 시스템의 특징은 노조화 된 거대한 근로인력과 제조업의 강세, 규제 경제와 사회안전망으로 요약된다.

미국에서도 위세를 떨친 이 같은 사회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는 주로 좌파에 의해 구축됐다. (우파는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 마지못해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같은 프로그램에 동의했을 뿐이다.)

버먼에 따르면 이 같은 전체 시스템이 세계화와 정보기술에 의해 위협을 받은데 이어 금융위기로 분열을 일으키자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그룹이 바로 좌파였다.(미국의 우파는 최소한 순수한 자유시장만이라도 제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면 위기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정직하고, 다소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쳤다.)

내가 보기에 좌파는 아예 처음부터 시장을 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 나오자 스스로를 자해했다.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 자유무역주의자들을 주축으로 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연전연승한 반면 연패를 기록한 것은 그들의 좌파 후임자들이었다.

버먼이 말하는 세 번째 요인은 앞서의 두 가지보다 훨씬 이념적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좌파는 최대 도전에 직면한다는 게 내 개인적 견해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의 중심추는 경제학의 핵심 이슈에서 정체성의 핵심 이슈로 이동했다. 이는 아마도 거대한 중산층의 성장이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어쩌면 좌파와 우파가 극적 차이를 보이는 판이하게 다른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은데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의 다수는 산업국유화를 원했고 우파 진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소셜시큐리티 안전망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인종과 종교, 민족성, 성과 정체성 등의 이슈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이슈에서 좌파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높은 연령층에 속한 백인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오지 않으면서 정체성과 다양성을 핵심 이슈로 내세우기 힘들다.

버먼은 나와 나눈 대화에서 좌파진영이 처한 도전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좌파는 개개인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대중의 대부분이 두려워하고 비관할 때, 다시 말해 지나간 시절에 향수를 느낄 때, 희망을 판매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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