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선회상 ‘과 희망

2018-06-09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작게 크게
한반도에 정치적인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조만간 남북 간 왕래는 많아질 것이고 사람들의 접촉이 많아지면 질병의 전염도 당연히 증가한다. 한반도의 하나 됨을 앞두고 뜻있는 의료인들은 많은 대비가 절실하다고 걱정한다.

북한의 낙후된 경제, 의료 사정 때문에 심각한 질환 중의 하나인 결핵은 공기를 매개로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는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주로 폐에 많이 발생하지만 신장, 척주, 임파선 등 어느 부위든 생길 수 있다.

감염이 됐다고 해서 결핵이 발병하는 것 아니고, 주로 면역체계가 저하 되었을 때 발병하게 된다. 특히 영양과 위생 상태와 밀접하기 때문에 저개발국에서 많이 발생한다.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약간의 미열과 오한이 오고, 자주 피곤하고 체중 감소 증상이 난다. 몇 주 동안 잦은 기침과 발열이 나면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결핵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북한에서는 11만 이상이 결핵에 걸렸다. 이는 인구 10만명당 442명인데, 이중 5,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반면 남한의 결핵 발병률은 10만명당 86명, 일본은 18명이었다.

1970년까지는 북한 국가차원에서 효과적 관리가 있었으나, 1980년 후반부터 시작된 대기근으로 결핵관리가 실패했다고 한다. 장기간 정교한 치료가 필요한 질병인데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실정에 어려운 일이다.

대북 결핵지원 사업은 여러 대북협력단체들이 헌신적으로 하여 많은 진전이 있기는 하나 더 많은 지원과 단체 간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UN, WHO 등 국제기구가 북한, 한국 정부, 그리고 민간단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범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정부는 북한 결핵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그것은 한반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결핵은 항상 있었지만 조선말기에는 더욱 창궐하여 망국병이라고 불렸었다. 이 공포의 질병 퇴치에 앞장섰던 사람은 캐나다인 의료선교사 가정이었다. 이야기는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핵은 조선 반도의 젊은이들이 꿈과 역량을 펼쳐보기도 전에 생을 강탈해 가고 있었다. 닥터 윌리엄 제임즈 홀과 부인 닥터 로제타 셔우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1891년 은둔 왕국, 조선에 왔다. 그들의 아들 셔우드 홀은 18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난 지 불과 1년 후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 홀은 청일전쟁 후 번진 전염병을 치료하다가 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란 셔우드 홀은 토론토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의사인 메리안과 결혼하여 1925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닥터 셔우드 홀은 황해도 해주시 남산, 소나무가 우거지고 앞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해주 구세병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조선 최초의 결핵 전문 치료 병원이었다.

그는 이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결핵환자들을 진료하였다. 부인 메리안은 외과와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닥터 셔우드 홀은 요양소의 운영비도 마련하고 결핵에 대한 계몽을 위해 크리스마스 실(Seal)을 발행하였다.


1932년 천신만고 끝에 발행된 실의 그림은 남대문이었다. 원래 그가 원했던 그림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대포였으나 거북선에 당했던 일제의 방해로 무산되고 결핵을 방어하는 성을 상징하는 남대문이 되었다.

조선반도에서 닥터 셔우드 홀은 누이동생과 아들을 잃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결핵퇴치 운동을 계속해 나갔다. 닥터 홀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횡포를 부리던 일본인들은 결국 범죄자라는 누명을 씌워 그를 추방시켰다.

1940년 한국에서 쫓겨난 닥터 홀은 인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였고 후에 ‘조선회상’을 썼다. 은퇴 후 캐나다에서 지내던 두 분을 한국 결핵협회가 1984년 초청하여 감사의 정을 표시했고 정부는 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들은 사망 후 한국의 양화진 묘지에 아버지와 아들과 3대가 함께 묻혔다.

황해도 해주의 남산 기슭 요양원 입구에는 “공포를 버리세요! 희망의 옷을 입으세요.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라고 적혀 있었다. 한반도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공포를 버리고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곳, 그것은 준비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